이미 사망선고 받은 부실기업
돈부어 연명시킨 관료책임 커

무리한 요구 남발 노조도 문제
시장 도외시 구조조정은‘실패’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 지원에도 38개월 만에 결국 법정관리 체제로 전환한 STX조선해양 사태는 관치금융과 정치인의 개입, 채권단의 오판과 무소신, 무능한 부실기업의 경영진과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무리한 요구를 남발한 노조 등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총체적인 ‘합작품’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지역 주민과 노조 등 ‘표’를 의식해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정치권의 개입과 사실상 이에 동조해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부실기업을 채권단 지원으로 연명시킨 금융당국 등 관료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TX조선보다 수십 배나 파급력이 큰 대우조선해양에도 이 같은 구조조정 과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어 STX조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STX조선처럼 시장 논리를 벗어난 구조조정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구조조정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법정관리 행(行)이 결정된 STX조선은 2013년 4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이후 무려 4조 원 이상을 지원받았지만 그해 1조5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000억 원 넘는 손실을 냈다. 이 정도로 부실이 심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시장 논리에 따라 법정관리에 돌입하는 게 정상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채권단을 탈퇴했는데도 불구하고 “살릴 수 있다”며 4000억 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강행했다. 당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비정기적으로 모여 주요 금융·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STX조선을 살리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면서 이 같은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 주민과 노조의 반발이 뻔한 상황에서 한때 세계 4위 조선사였던 STX조선을 ‘죽이는’ 결정을 하기에는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고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지난해 10월 부실 회계로 수조 원의 적자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4조2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 지원이 결정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정치 논리와 관치금융 관행은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 지도부는 지난 23일 조선소가 많은 거제를 방문해 고용 유지 등을 약속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와 채권단은 자금 지원만 이뤄지면 살아날 수 있다는 오판을 하고, 정치권은 고용 문제 등을 이유로 개입했다”며 “향후 구조조정 과정은 철저한 시장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