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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누나 향도 씨 밝혀

“1988년 美유학중 내게 편지
살아있다면 희망 노래했을 것”

생전 시집을 남기지 못한 천재시인 기형도(1960∼1989·사진)가 첫 시집 발간을 준비하면서 원래 제목을 ‘정거장에서의 충고’로 하려 했다는 유가족 증언이 나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소설가 성석제, 평론가 김현 등이 발간한 유고 시집의 제목은 ‘입 속의 검은 잎’이다.

기형도 시인의 친누나 기향도(63) 씨는 17일 “동생은 첫 시집의 제목을 ‘정거장에서의 충고’로 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 텍사스에 있던 기 씨는 “아마 1988년으로 기억한다. 동생에게서 ‘시집을 낼 생각인데 제목을 어떻게 짓는 것이 좋을지 누이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물어보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왔었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시인이 보낸 마지막 편지였고, 시인은 1989년 3월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1988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실린 작품이다. 기 씨는 “시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란 구절로 시작한다. 문단에서는 동생의 시적 관념이 잿빛의 어둡고 우울한 시대상을 묘사한다고 평가되지만, 이 시만큼은 희망을 말하고 있다”며 “동생이 살아있다면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일찍이 아버지의 중풍으로 가세가 기울어 어린 나이에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형과 누나를 모티브로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시인에 대해 “나이가 어리지만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며 “세 살에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칠 정도로 영특했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밝은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기 씨는 이르면 내년 6월 경기 광명시 소하동 일원에 동생의 작품 세계와 문학 정신을 기리는 ‘기형도 문학관’이 문을 열게 된다는 소식에 “동생을 기억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으로서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우리 가족이 살던 고장에서 많은 이들이 시 문학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명 =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