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허인구 회장이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2로 해운대관광고 본관 재단이사장실에서 퍼팅 연습을 하고 있다.

허인구 ㈜DSE 회장

허인구(67) ㈜DSE 회장은 골프 예찬론자다. 허 회장은 골프를 비빔밥에 들어가는 ‘참기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허 회장은 “참기름은 밥이 여러 재료와 잘 비벼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고소함을 배가시켜 준다”며 “골프는 인간 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믿음을 점검할 수 있으며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사람과 만나거나 대화하는 데엔 골프만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을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2로 해운대관광고 본관에서 만났다. 이사장실은 본관 맨위 허름한 옥탑방이다. 허 회장의 명함에는 동룡학원 이사장, ㈜DSE 대표이사, ㈜홍인당 대표이사 등 3가지 직책이 적혀 있다. 동룡학원은 아버지 때부터 운영해오던 해운대관광고 재단. ㈜DSE는 1990년 허 회장이 창업한, 세계 1위의 전기·전자용 플라스틱 박스를 생산하고 수출해 온 ‘강소기업’. 허 회장은 몇 해 전 ㈜홍인당을 설립했고 현재 부산 기장군에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허 회장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5년 전. 허 회장은 41세이던 1990년 부친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겠다며 창업했다. 1년 가까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인지라 부침이 많았다. 골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던 허 회장을 고교 동창이 “밥 한번 먹자”며 불러냈고, “사업하려면 골프는 꼭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날부터 그 동창은 아침마다 허 회장 집으로 출근하듯 찾아왔고, 허 회장을 연습장에 데려다 주는 지극정성을 펼쳤다. 그 덕에 골프에 입문했다. 허 회장은 “일에 몰두하면서 내 생활을 잃어 버렸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골프를 하면서 이 모든 것을 채우고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25년 전 동창이 자신에게 그랬듯, 허 회장은 만나는 사람에게 골프를 하느냐고 묻고, 골프를 안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곧바로 골프를 권유하고 있다. 자신을 제어할 수 있고, 좋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허 회장의 골프 예찬론에 넘어가 클럽을 잡은 이는 10명이 넘는다.

허 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10여 년 전 양산 에이원 골프장에서 기록한 78타다. 예나 지금이나 80대 스코어를 유지하면 감지덕지. 실력이 늘지 않지만 골프채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건 골프의 가치를 볼을 잘 치기 위해서가 아닌 생활의 리듬을 찾는 데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한창 땐 드라이버 비거리가 210m였지만 지금은 180∼200m로 줄었다”며 “그래도 또래 중에서 중간치는 넘는다”고 자랑했다.

허 회장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홀인원이다. 홀인원은 2차례 경험했다. 사업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이유가 홀인원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골프를 접한 지 3년도 채 안 됐을 무렵, 1993년 김해시 가야골프장 신어코스 2번 홀(파3·140m)에서 7번 아이언으로 첫 행운을 잡았다. 시작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홀인원을 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라운드를 마칠 때까지 들뜬 탓에 100타를 훌쩍 넘겼다. 두 번째 행운은 2000년 8월 20일, 부산 동래골프장 17번 홀(파3·130m)에서 8번 아이언을 잡고 홀인원을 남겼다.

홀인원 기운 덕에 사업은 잘 풀렸다. 1990년 창업했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큰 위기 없이 성장해 왔다. 똑똑하고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를 지켜왔고, 그 덕에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지금의 ㈜DSE를 키웠다. 허 회장은 학교 일이나 라운드로 시간을 보낸 다음 공장을 꼭 한번 둘러본다. 24시간 체제로 운영되기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심한 ‘현장 확인’은 기술 개발과 함께 25년째 세계 1위를 지키는 비결이 됐다. 허 회장은 “공장 신축이 끝나는 연말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아이템으로 또다시 세계 시장을 석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허 회장은 인터뷰 도중 이틀 전 가야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세인트나인 넥센 마스터스 프로암 기념사진을 보여줬다. 허 회장은 “그날 난생 처음으로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고, 골프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동반했던 이정화 프로가 “정렬(얼라인먼트)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했다. 어드레스 때 몸을 ‘오조준’해 치다 보니 볼의 방향이나 임팩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뜻하지 않은 기술적인 팁을 선물로 받은 허 회장은 이정화 프로에게 ‘명상’에 대한 조언으로 답례했다.

허 회장은 불교 신자로 ‘참선’에 관해선 그 누구와 토론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조예가 깊다. 허 회장은 참선 불교에서 말하는 ‘팔풍부동(八風不動)’, 즉 이익과 손해, 고통과 즐거움, 칭찬과 비난, 명예와 악명에 끌려 흔들리지 말라는 걸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허 회장의 건강 비결은 걷기와 달리기다. 골프장에선 카트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다. 또 매일 새벽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해운대 백사장에 나가 달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후엔 동백섬을 서너 바퀴 빠른 걸음으로 도는 걸 잊지 않는다. 허 회장은 ”좋은 친구들과 골프를 통해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인생의 낙”이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부산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