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빨간불 26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 빌딩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정부는 이날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과 관련, 당초 계획했던 규모보다 더 많은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다. 뉴시스

전세계 ‘수주절벽’ 상황인데
선박건조능력 오히려 증가세
부실한 업체부터 설비 줄여야

관리에 실패한 산업은행 대신
민간회사에 구조조정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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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물동량 감소로 인해 국내 조선산업이 ‘수주 절벽’ 상황에 처했지만, 한국의 선박 건조능력만 세계 추세와 반대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조선업계가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설비 감축 등 공급과잉 상황을 우선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26일 조선산업 구조조정 방향을 발표하면서, 설비 감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포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구체적인 설비 감축 대책을 마련하거나 민간 전문 컨소시엄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27일 클락슨에 따르면 독(선박 건조·수리 시설) 규모와 수 등 조선설비 현황을 기준으로 건조능력 전망치를 추산한 결과, 한국은 2015년 154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2017년 1560만CGT, 2018년 1590만CGT, 2019년 1600만CGT, 2020년 1630만CGT로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주는 급감하고 있는데 배를 만드는 설비를 줄이지 않으면서 건조능력치만 계속 증가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미 2012년 2560만CGT에서 2015년 1870만CGT로 크게 줄었다. 이후 전망도 2016년 1860만CGT로 하락하고, 2018년 1870만CGT로 소폭 상승한 이후 유지할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도 2015년 900만CGT에서 2016년 880만CGT, 2017년 870만CGT로 떨어진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과 일본이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때 우리나라는 정부 개입으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업종의 설비 감축은 결국 독 등 주요 설비 숫자를 줄여야 한다. 현재 대형 조선사가 모두 5개 이상의 독을 유지하고 있는 한, 독을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저가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독을 폐쇄하는 과감한 설비 감축을 하게 되면 공급과잉을 줄일 수 있게 되고, 이럴 경우 업체들이 정상적인 가격으로 선박 수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성기종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모든 업체가 플로팅 독을 줄이는 방식으로 감축하는 방법도 있지만, 민간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줄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가장 부실한 업체의 설비를 과감히 줄이도록 구조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은 현재 수주 잔량 면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클락슨 조사 결과 세계 수주 잔량 상위 1∼4위가 모두 한국업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수주 잔량은 3월 말 기준 118척·782만CGT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수주 잔량은 향후 1∼2년 정도를 때울 수 있는 일감으로, 수주 절벽 상황에서는 조선설비들의 가동률이 뚝 떨어지게 된다. 업황이 되살아난다고 해도 지금 공급과잉을 해소하지 않으면 또 저가수주 경쟁, 출혈경쟁이 이어져 똑같은 위기 상황을 반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대우조선해양에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관리에 실패한 산업은행에 또다시 구조조정을 맡기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미국처럼 전문 민간 회사에 맡겨 조선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