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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감독 다큐 ‘태양 아래’ 오늘 국내서 세계 첫 개봉

단란한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한다. 상 위에는 반찬이 가득하다. 아버지는 딸에게 김치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김치 200ｇ과 김치국물 70㎖를 먹으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 절반을 섭취할 수 있어”라고 김치의 효능을 설명한다. 이때 한 남자가 화면에 나타나 아버지에게 “평소 집에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같은 장면이 대사를 바꿔가며 몇 차례 반복된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사진)의 초반 장면이다.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1년간 북한에 체류하며 만든 이 영화는 8세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진미 부모의 일상 등을 담았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태어난 만스키 감독은 26일 영화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북한에 갔지만 내 계획대로 촬영할 수 없었다”며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거짓된 연출이 북한의 사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몰래 촬영했다”고 밝혔다.

만스키 감독에 따르면 진미는 촬영 전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직업은 기자이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진미 아버지는 봉제공장 기술자로 둔갑했고, 어머니는 콩우유 공장 노동자가 됐다. 진미가 사는 집도 주체사상탑이 내려다보이는 평양의 고급 아파트로 바뀌었지만 부엌에는 식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진미 부모가 직장에서 일하는 장면도 ‘조작’됐다. 그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지 않고, 생산성이 크게 높아진 점만 강조하며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꾸몄다.

만스키 감독은 이 다큐에 노골적인 사기극을 담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첫 장면에 “북한 측이 대본을 줬다. 하루 종일 수행원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영화 촬영장소를 선정하고 우리가 찍은 화면을 검열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의 완벽한 한 가정의 삶을 표현하는 데 우리가 실수하지 않기 위한 조처였다”고 비꼬는 자막을 넣었다.

북한 측 인사가 수시로 화면 속에 끼어들며 ‘블랙 코미디’같이 펼쳐지는 영화를 보면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폐쇄적 체제에 세뇌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특히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진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애틋한 아픔이 전해진다. 우는 진미를 달래기 위해 러시아 측 통역이 진미에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자 진미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통역이 “그럼 시를 외워보라”고 하자 진미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께서 세워주시고…”로 시작되는 시를 외우기 시작한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서 지금도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 알리고 싶었다”며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이 다큐가 제19회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북한은 러시아에 상영 금지를 요청했고,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여 상영 불가를 결정했다. 국내에서 27일 전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전체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