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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지난 4·13 총선은 여소야대를 만들었고, 여기서 읽을 수 있었던 민의(民意)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오만한 공천 과정, 그리고 소통과는 거리가 있는 국정 운영 리더십의 방식에 대해 분명히 경종을 울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총선 이후 여당의 행태다. 새누리당은, 다수당으로 등극한 더불어민주당과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 지지에서 2위를 차지한 국민의당 모두 총선 민의를 받들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구조개혁 기치에 두 야당이 협력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상반되게 아직도 당내 리더십을 놓고 집안싸움에 연연하는 새누리당에 국민은 또 한 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우리 국민은 통합과 신뢰, 그리고 진정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꼽는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소로,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질과 함께 정치 리더십이 국민의 집합적 의사를 집약해 방향을 설정하고 국가의 힘을 모으는 결단력을 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대의기관인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낮아 다시 한 번 도약해서 선진국으로 안착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질타는 야당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게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총·균·쇠’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벽에 부닥치고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원인이 워낙 다양하고 복합적이어서 하나의 근본적 원인만 제거하는 만병통치약식 접근은 오히려 다른 실패 원인들을 강화해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의 데자뷔처럼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지도자의 일관성 있는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경제는 2만 달러의 문턱에서 11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에 더해 과거 우리의 주력 산업이었던 해운·조선·철강 산업 등의 미래가 매우 어둡다. 정말로 정치력을 발휘해 국민의 역량을 집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젊은 경제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나. 정부가 규제개혁과 산업구조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려는 이 시점에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실패 요인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점진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고쳐나가야 하는 실패 요인은 정치권에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바로서기가 중요한 과제다.

정치는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의 시각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만연한 ‘사실과 다른 과도한 패배의식’이나 실제 객관적 통계와는 전혀 다른, 부정적인 주관적 인식 또한 근본적 원인은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불투명성, 일탈행위,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안하무인식 행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고 후년에는 다시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집권 여당의 붕괴된 리더십은 용납될 수 없다. ‘천막 당사’ 시절의 초심(初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