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지금 정치권은 표심(票心)을 잡기 위해 간이라도 내줄 판이다. 어려운 경제에 지친 국민에게 최저임금 상승과 일자리 약속을 줄지어 내놓고 있다. 야당이 최저임금을 올려주겠다고 하자 여당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닥을 잡아 맞장구쳤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고용인의 수보다 찬성하는 피고용인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얕은 표 계산이다. 모든 정당이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하면 표(票)의 이동 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실현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아르바이트 급료를 올리고 노동계의 임단협 협상을 앞둔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높인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동화와 기계화, 그리고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잃게 되는 사람을 양산할 것이다. 최저임금 근로자 중 빈곤가구는 절반도 안 되는 현실에서 빈곤층의 생계비 향상이 목적이라면 빈곤가구에 세제 혜택을 주거나 소득별이나 업종별로 최저임금액을 달리하는 게 낫다.

정당들은 각종 일자리 약속도 내놓았다. 최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삼성의 미래차(車) 산업을 광주에 유치해 5년간 2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다급할수록 더 자극적인 말을 쏟아낸다. 광주시장 후보라면 몰라도, 전국을 대표하는 중앙정치인이 특정 지역에 특정 기업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삼성과 삼성의 투자 유치를 내심 바라는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발언이다. 신규 사업 투자는 기업이 입지와 경제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이 나서면 할 수 있다는 사고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던 20세기적 발상으로 반(反)민주적이다.

이 밖에도 법인세 인상이나 초과이익 배분 등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선심정책으로 재정에 부담을 주는 재탕성의 날림 경제 공약이 난무한다. 금배지를 달고 싶은 조바심에 자신의 코가 석 자니 참신하고도 현실성 있는 경제 공약을 챙길 여유도 없는가 보다.

오늘의 경제 현실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저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 불안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각종 경제 악재 속에 의정활동을 해야 하는 새 국회의원들은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경제정책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경제공약을 내놓을 때는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거시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외면하고, 선거 마당에서 외치는 일자리 만들기는 공허하게 들린다.

이제, 소득 불균형 축소,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 등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구조 개혁을 통해 기업이 풀게 해야 한다. 기업이 스스로 노동 개혁을 통해 고용 구조와 임금 구조를 바로잡아 청년 실업과 고령화 문제를 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가로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 온갖 규제와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기업에는 족쇄를 채우고 정치권이 나서서 경제를 이끌며 선심을 베풀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당장 국회의사당의 의석수에 목멘 정치권에 멀리 내다보고 길게 호흡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이 나서서 정치권의 사탕발림에 휘둘리지 말고 진심으로 경제를 걱정하는 참된 정치인을 가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