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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호르몬’ 분비 줄면서 되레 더 무기력 ‘악순환’

정년퇴직 후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한 A 씨는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젊을 때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부장까지 승승장구했던 그였지만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서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진다. 요즘에는 만사가 귀찮아 집에서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A 씨처럼 우울한 감정을 달래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술은 우울한 감정을 강화하고 심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초래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특히 우울증과 술 문제를 함께 보일 때는 우울증뿐 아니라 반드시 알코올 문제도 치료받아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5년 자살자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사망 당시 음주 상태였던 자살자는 39.7%였으며 음주로 인한 문제 발생자는 25.6%였다. 가족의 알코올 문제 비율은 53.7%를 차지해 우리나라 자살 문제가 음주 문제와 깊은 관련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에 걸리면 단순히 우울한 기분이나 감정 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식사와 수면 패턴이 달라지거나 급격한 피로감과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는 예도 있다. 체중 변화도 생기고 평소 부정적인 생각,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우울함 △흥미나 즐거움 저하 △체중 변화 혹은 식욕 감소나 증가 △불면이나 과다수면 △초조감 또는 처진 느낌 △피로감이나 활력 상실 △무가치함 또는 죄책감 △집중력 감소와 판단력 저하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의 항목에서 5개 이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심각한 문제는 우울증을 술로 해결하는 경우다. 알코올은 세로토닌 분비에 영향을 준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의식 수준이나 건강 상태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적당량의 술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수치를 높여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오랜 기간 잦은 과음에 노출된 경우, 알코올로 인한 자극에 둔감해져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가 감소한다.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계속 술을 마시면 더 우울한 감정에 빠져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51%가 과도하게 알코올을 섭취하고 있다”면서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뇌의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키며 이성적인 제어나 판단이 어려워져 충동적인 자살 등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