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안병모(왼쪽 첫 번째) 군 등 한국기원 연구생들이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 양천대일도장에서 복기를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한국기원 바둑연구생의 세계

年 8회 순위전 10명씩 탈락, 신입으로 ‘물갈이’

연구생되려면 선발전 통과해야… 이창호9단·이세돌9단 등 배출

1부·2부리그 나눠 매주 리그전… 19세 넘기면 연구생 자격 박탈

5~6년 지나야 ‘최고’ 1조 승급… 1조 연구생은 세계20위권 실력

성적 1위·입단대회 우승 2명外 일반대회 거쳐서 10여명 ‘프로’

한국기원은 연구생 제도를 운영한다. 연구생은 제2의 이세돌을 꿈꾸는 ‘프로기사 사관생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닌 바둑 영재들이며 프로 입단과 프로기사의 길을 걷기 위해 온종일 바둑과 씨름한다. 1년에 4차례 치러지는 선발전을 통과해야 연구생이 된다. 연구생으로 선발되면 아마 5단 이상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연구생은 1970년대에도 간헐적으로 운영됐지만, 1986년 연구생 교육을 받았던 이창호(41) 9단이 프로로 입단하면서 정착됐다. 물론 이세돌 9단도 연구생 출신이다.

한국기원에는 132명의 연구생이 매주 리그전을 치르며 프로 입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연구생 대부분은 프로기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연구생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소수만이 ‘수졸(守拙)’로 불리는 프로 초단이 돼 ‘완생’의 기쁨을 누린다.

프로 입단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미생으로 분류된다. 연구생의 나이 제한은 19세 이하. 이때까지 프로로 입단하지 못하면 연구생 지위를 박탈당한다. 한국기원 연구생은 실력이 높은 1군(1∼3조)과 2군(4∼6조)으로 나뉜다. 1조가 최상위. 1∼3조는 조별로 12명, 4∼6조는 조별로 32명이다. 같은 조끼리 대국하며 치열한 ‘연구생리그’를 치른다. 1년에 8차례 승강이 이뤄지는데, 성적에 따라 조별 인원의 3분의 1 정도가 상위 조로 승격하고, 3분의 1 정도는 하위 조로 강등된다. 6조 최하위 10명은 연구생에서 탈락하고 연구생 선발전에서 새로 뽑힌 10명에게 자리를 내준다.

연구생 경력 5∼6년, 나이로는 17∼18세가 돼야 1조에 들어간다. 1조 중 프로로 입단하는 건 1년에 2명. 연구생리그 최고 성적 1명, 상위 16명이 겨루는 연구생 입단대회 우승자 1명에게 프로 입단의 ‘영예’가 돌아간다.

연구생은 또 일반입단대회 등에 참가해 프로 입단을 노릴 수 있다. 일반입단대회에선 5명까지 프로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프로가 되는 길은 또 있다. 14세 이하가 참가하는 영재입단대회(3명), 한국기원의 지방분원 연구생들이 도전하는 지역연구생입단대회(1명), 여자입단대회(2명), 그 외 특별입단(2∼3명) 등이 있다. 하지만 모두 합쳐도 1년에 프로기사가 되는 건 15명 안팎이다.

연구생이라고 해서 ‘학생’ 수준으로 생각하면 오산. 1조쯤 되면 세계랭킹 20위권 내에 들어가는 정상권 프로기사들과의 대국에서 종종 승리한다.

안병모(18) 군은 지난해 연구생 1조 멤버가 됐다.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양천대일도장에서 만난 안 군은 “인터넷 바둑으로 중국의 탄샤오(檀嘯) 7단이나 탕웨이싱(唐韋星) 9단 등 정상권 기사들을 이겼다”며 “하지만 연구생 1조 승격을 확정했던 대국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안 군은 프로기사의 꿈을 위해 10세 때 부산에서 상경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할머니가 서울에서 안 군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안 군은 중학교 1년을 마치자마자 자퇴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에 프로 입단에 실패하면 연구생 대부분은 아마기사로 남고, 진로를 바꾼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올해 연구생 자격을 잃은 김기백(20) 씨는 지난 2월 3일의 제136회 일반입단대회를 잊지 못한다. 8승이면 입단을 위한 최종 재대국을 벌일 수 있었지만, 김 씨는 11번째 대국에서 불계패해 7승 4패에 그쳤다. 김 씨는 “11번째 대국에서 패한 뒤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한국기원에서 용산구 이촌동의 기숙사까지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며 “5세 때 바둑을 시작해 지금까지 15년간 바둑에 매진해 왔기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전히 프로 입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인 10대 프로바둑 기사 최택에게는 ‘쌍문동 5총사’로 불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다른 법. 연구생이 바둑을 두지 않는 친구를 사귀는 일은 힘들다. 연구생으로 선발되면 상당수가 학교를 그만두고 바둑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연구생은 조퇴하고 바둑 도장으로 향한다.

연구생들은 유명 프로기사, 명망 있는 아마기사들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바둑을 공부한다. 한국기원에서는 리그전과 프로기사의 지도대국이 이뤄지며, 대부분의 교육은 도장에서 진행된다. 연구생들은 오전 9시쯤 도장으로 ‘등교’해 오후 9시를 넘어서까지 공부한다. 그런데 연구생들의 바둑 공부는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분석하는 등 독학이 대부분이다. 지도사범의 역할은 매일 치르는 실전 대국 뒤 함께 복기하는 게 전부다. 실력이 엇비슷한 연구생들이 모여 ‘자극’을 주고, 대국을 펼치면서 기량을 키워 나간다. 스파르타식 교육을 실시하는 양천대일도장의 경우 기숙하는 연구생들이 많은데 집에 가는 때는 설과 추석, 학원에서 정한 여름방학 등 단 3차례뿐이다. 또래 ‘일반’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은 없다.

연구생들을 지도하는 한종진 9단은 “연구생 정도 되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연구생들에게 바둑은 아이돌 가수보다 중요하다”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지켜본 뒤 더욱 열심히 바둑을 공부하는 연구생들이 늘었다. 프로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알파고가 연구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