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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국인의 초상’·‘모든 군인은…’

연극 ‘한국인의 초상’(연출 고선웅)과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연출 박근형·사진)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담았다. 바로 엊그제 신문에서 본 것 같은, 혹은 몇 달 전이나 몇 년 전, 혹은 역사책에서…. 모두가 보거나 들었던 ‘그’ 장면들이 펼쳐진다. 두 작품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들의 신작으로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연일 객석은 만원.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쓰리다. ‘좋은 날’이 오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이야기. 두 연극은 탁월하지만, 그 유통기한만큼은 부디 짧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초상’은 10대 흡연, 미혼모, 성폭행, 지옥철, 대리운전, 카톡 해고, 비정규직, 마마보이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실제 사건과 현상 등 27개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주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소재지만, 극은 내내 ‘웃긴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암울하지만, 그래도 한 번 해(日)를 보고, 또 해(行)보자는 메시지가 경쾌한 음악들과 함께 던져진다. 대책(?) 없이 즐거운 연극에 혹자는 갑갑해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 사회를 90분에 압축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연극은 소임을 다했다. ‘아침 해’ 같은 강렬한 빛이 무대를 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작품의 끝마다 화(和)를 전하는 고선웅식 엔딩의 결정체다. 정재진, 원영애, 김정은 등 출연. 오는 28일까지 서울 서계동 소극장 판, 1644-2003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한국의 탈영병과 태평양전쟁 당시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그리고 이슬람 무장세력과 천안함 희생자 등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군인들을 소환한다. 장면은 1945년 일본 오키나와(沖繩)였다가, 2015년의 대한민국이었다가, 2004년 이라크로 이동한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들쑥날쑥 드나들지만, 극을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다. 연출의 힘이다. 무엇보다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을 이어가는 연극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건 미덕. 연극은 언뜻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에 반기를 드는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모든 ‘군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는 보편적인 주제로 전이된다. 무리는 아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박근형 연출은 지난해 ‘예술검열’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더욱 ‘센’ 메시지를 기대한 관객에겐 다소 싱거울 수 있다. 고수희, 이원재 등 출연. 오는 27일까지, 남산드라마센터. 02-758-2150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