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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에피소드

남극 자기장 몸에 좋다며
중동 왕자들 많이 찾아와

고산 등반땐 고어텍스보다
천연 솜·실크 제품이 유용

홍성택(50) 원정대장은 지난 2005년 북극을 탐험할 때 유빙(떠다니는 빙하)으로 인해 바다에 빠지는 등 죽을 고비를 7번이나 넘겼다. 홍 대장이 차가운 바다에 빠지고도 살아난 건 적절한 대처 덕분이었다. 극지 탐험가들은 물에 빠진 동료를 곧바로 구조하지 않는다. 물에서 나오는 즉시 영하 50도의 극저온으로 인해 온몸이 얼어붙어 동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얼지 않은 0도의 물속에 있는 게 낫다. 즉시 구조하기보다는 먼저 텐트를 치고 안에 불을 지펴야 한다. 준비되면 빠진 사람을 건져 올려 텐트 안으로 옮기고 빨리 마른 옷으로 갈아입힌다. 홍 대장은 북극을 횡단하면서 이런 경험을 수차례나 반복했다.

북극엔 또 북극곰이 위협한다. 북극곰은 영리하고 또 집요하다. 56일 동안 북극을 횡단하면서 홍 대장은 여러 차례 북극곰과 ‘대치’했다. 홍 대장은 “북극곰은 2∼3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며 “원정대의 식량을 노리고 나타나는데 총을 휴대하고 다니며 총소리로 위협해 쫓아버렸다”고 설명했다. 홍 대장은 “북극곰이 고추장을 좋아한다”며 “고추장이 묻어있는 빈 그릇을 버리면 어느 틈에 북극곰이 찾아와 그릇에 남은 고추장을 혀로 말끔히 핥아 먹었다”고 덧붙였다.

남극은 북극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홍 대장은 “1994년 남극에 갔을 때 중동의 왕자들이 많이 와있길래 놀랐었다. 알고 보니 남극점의 자기장이 몸에 좋다며 그 기운을 쐬러 관광차 방문한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고산 등반 때 입는 고어텍스나 구스다운은 극지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히말라야는 건조한 바람이 불지만 극지에는 습도가 높은 바람이 분다. 아무리 기능성이 좋은 옷도 적게는 10분에서 많게는 1시간이면 다 얼어버린다. 극지에서는 천연 솜과 실크 제품이 유용하다. 고산 등반에서는 ‘고소’ 적응이 관건이다. 2000∼3000m 이상 고지대에 올라가면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산소가 희박하고 기압이 낮아 두통, 구토 등의 증세를 경험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우선 고소에 적응한 뒤 셔틀버스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나아가야 한다.

홍 대장은 오랜 원정 경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물론 대원들이 부상당한 일은 거의 없다. 동상에 걸린 적도 없다. 스스로 몸 관리에 철저하고, 또 정복에 대한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고 후퇴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 도중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1991년 6월 6일엔 북한산 인수봉 훈련 중 추락해 다쳤고, 1996년 6월 또 북한산 인수봉에서 훈련하다 추락해 발목이 골절됐다. 지금도 그의 오른발목엔 철심 3개가 박혀 있다. 홍 대장은 “공교롭게도 모두 현충일에 벌어진 사고였다. 그래서 요즘도 6월 6일에는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