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이 예상대로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국민참여 경선, 상향식 공천 등의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원론적·현실적·기술적 ‘다중(多重) 결함’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지난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안심번호 제도’를 도입했지만, 안심번호 여론조사를 참고 자료가 아니라 공천 제도를 대체하는 식은 조사에 결함이 많고 정당 정치에도 배치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당내 경선을 위해 지난주부터 예비후보자들에게 ‘안심번호 당원 명부’를 제공한 결과, 이런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안심번호 여론조사에 의해 당원 30%, 일반 여론조사 70%를 반영하는 공천 방식을 채택했다. 그런데 전화로 안심번호 명부를 확인한 결과, 전화 10통을 걸면 절반이 해당 지역에 살지 않거나 심지어 결번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안심번호 경선의 실효성이 없다. 더 근원적으로는 당원 명부 자체부터 엉터리일 가능성도 크다. ‘유령당원’ 얘기는 이미 파다했다.

당원 명부가 이 지경이라면 일반 안심번호 여론조사는 더 문제가 많을 것이다. 여론조사의 기본은 ‘표집(標集)의 과학성’인데, 이를 보장하기 어렵다. 공직선거법에는 성별·연령 등을 거짓으로 응답하거나, 2개 이상 전화번호로 여러 차례 응답하는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으나 이것으로 253개 지역구에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수많은 여론조사의 표본을 제대로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의원 예비후보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보 부족도 심각하다. 결국 안심번호 공천은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에 맡기는 ‘로또식 공천’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크다.

더 근본적으로는 여론조사 공천 자체가 정당·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 앞서 제기된 모바일 여론조사의 허점까지 더해지면 ‘공천의 정당성’ 차원까지 비화한다. 안심번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 되기 때문에 사후에 확인할 수단조차 없다. 엄청난 비용을 예비후보자들이 부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불법 시비와 불복 소송 등 극심한 후유증도 예상된다. A부터 Z까지 모두 문제인 것이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당원들의 직접·비밀 투표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代案)을 마련하기 바란다. 시일이 촉박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