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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외교부 근무 첫날부터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정부를 떠날 때도 그랬고, 다시 돌아온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고요. 입부 당시에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8월 18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그랬는데, 지금은 북한 문제를 포함해 크고 작은 도전들이 계속 있다 보니까 ‘워커홀릭’과 관련된 별명이 사라지질 않네요.”

재임 3년 차, 이미 최장수 장관에 등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밤늦게까지 일하며 세세한 일까지 챙기는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17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윤 장관은 피곤한 기색 없이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선택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연출되는 엄중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그의 개인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과 5년 임기를 같이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오병세’ 외에 붙여진 숱한 별명은 일 스타일과 관련돼 있다. 밤새도록 일한다는 의미의 ‘올빼미’, 실무 직원들의 보고서를 일일이 고친다는 ‘빨간 펜’ 등이 그렇다. 특유의 꼼꼼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직원들의 암묵적인 항변도 담겨 있다.

그가 재임 기간 중 남긴 숱한 흔적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콘클라베’ 또는 ‘광화문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도 불리는 회의 문화. 새벽까지 장시간 이어지는 회의에서 윤 장관은 실무자급보다 더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질문을 던져 국장들의 뒷목을 뻣뻣하게 만들기로 유명하다. 장관의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직원들이 나오자 올해부터는 콘클라베 대신 이슈가 있을 때만 필요 인원이 모이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최근 외교부 건물 옥상에 처음으로 스카이라운지 카페를 만든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숨 쉴 곳’을 제공한 상관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윤 장관은 전임 장관들에 비해 평균 해외 출장 횟수도 배로 늘었다. 윤 장관은 “대한민국을 찾는 나라도 많아지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해야 할 역할도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국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지난 한 해 4개월을 해외 출장으로 보냈다. 이동한 거리만도 지구 10바퀴 정도에 달한다. 정상회담 수행뿐 아니라 사전에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조율해야 하니 당연하다. 주변에서는 강행군 일정을 3년여 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40년간 밤샘·출장 근무로 만들어진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노무현정부 말기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뒤 이미 한번 ‘순장조(殉葬組)’ 역할을 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내내 밖에서 야인 생활을 했다. 한 관계자는 “윤 장관이 박 대통령에 의해 다시 발탁된 것은 장관의 이러한 업무 역량·스타일에 대한 믿음과 무관치 않다”고 귀띔했다.

윤 장관은 공직에서 물러나 있을 당시 박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분야 관련 조언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해 현 정부의 대외전략 밑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했다. 윤 장관의 박 대통령 독대 횟수는 타 부처 장관들을 압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현 정부 최장수 장관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대신 외교부 장관의 역할론으로 답을 대신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 외교가 직면한 상황이 엄중해 외교부가 나름대로 큰 틀을 갖고 전략적인 로드맵을 추진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부분적으로 기여한 바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이젠 (장관 개인이 아니라) 외교부가 시스템으로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협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