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11월 5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하노이 대통령궁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中, 베트남 지도부 교체에 촉각

북한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은 지난 1월 말부터는 베트남 지도부 교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만의 반중국 성향 민진당 집권과 미얀마 군부 독재의 종식에 이어 베트남까지 과거 중국 공산당과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던 동남아 국가들이 줄줄이 미국을 향해 돌아서는 게 아니냐는 초조함 때문이다. 게다가 유일한 ‘중국식 개혁개방 성공 모델의 동지’인 베트남을 놓고 ‘민주화’까지 거론되자 중국으로서는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친미파’ 대 ‘친중파’ 대리전… 中, 베트남 선거에 촉각 = ‘친미파’ 대 ‘친중파’의 막후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결국 지난 1월 28일 막을 내린 베트남 제12차 전당대회에서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연임하고 친미 성향의 응우옌떤중 총리가 물러나기로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연임한 응우옌푸쫑 서기장에게 축전을 보냈다. 이번 지도부 교체 이벤트에서는 친미 성향의 응우옌떤중 총리가 서기장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친중 대 친미’ 대립전으로 해석됐다. 친미 성향의 응우옌떤중 총리가 권력 서열 1위인 서기장에서 탈락하면서 중국으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구소련 유학파로 베트남 내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론가인 응우옌푸쫑 서기장은 연임 일성으로 “원칙과 규율이 없는 국가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하다, 우리는 균형 잡힌 민주주의와 법, 질서가 필요하다”면서 “베트남 공산당은 단일 정당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주적인 규율과 지도부의 책임이 있다”면서 공산당 지도 체제 안정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권력 서열 3위로 서기장 후보였던 응우옌떤중 총리는 5월 총선 후 개원하는 새 국회에서 퇴임한다. 그는 2006년부터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해 왔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독재 국가이지만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면서 공산당 노선 유지를 주장하는 친중 보수파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받아들이려는 친미 개혁파 간 권력 투쟁이 치열해졌다. 이번 당 대회에서도 당 대회 수개월 전에 서기장과 총리 등을 미리 결정하던 관례가 깨진 것만 봐도 권력 투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친미파로 분류되는 응우옌떤중 총리는 과거 업무보고에서 “개혁의 근본 목적은 미국과 같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집권하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베트남 민주공화국’으로 바꿀 것이라는 관측까지도 나왔다. 베트남 시민들 역시 오랜 권력 투쟁과 공산당의 부정부패에 질렸으며 공산당 독재 정치에 대한 싫증과 불신이 높아진 상황이다.

베트남과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영유권 분쟁 등 갈등과 대립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애증의 관계’다. 특히 중국과의 대립 지점인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주도하는 공산당은 다소 완화된 태도를 보인 데 반해 응우옌떤중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취해 왔다.

◇주변국 다 친미로 넘어가나…미국에 의해 ‘포위되고 있다’ 위협 느끼는 중국 = 중국은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과거 우호 관계를 유지하던 정권들이 친미 계열로 교체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대만 총통 선거에서 중국 공산당과 협력 관계를 주장하던 국민당이 참패하고 중국과 각을 세우며 미국과의 협력도 내세우는 민진당이 집권했다. 과거 군부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미얀마에서도 선거를 통해 군부가 대패하고 민주 세력인 아웅산 수지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장이 사실상 국가 지도자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베트남의 지도부 교체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응우옌푸쫑 서기장의 연임 이후 “베트남은 여전히 개혁을 해 나갈 것”이라면서 “서방이 보는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 국제 관계 전문가는 11일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영유권 분쟁으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갖는 베트남의 전략적인 가치는 다른 모든 동남아 국가들을 합친 것 이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박세영 특파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