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푸근한 삶’을 담은 ‘자전적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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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 윤석남·한성옥 지음 / 사계절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그림책.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로 ‘자기만의 방’을 꼽았다. 여성이 삶을 이야기로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태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다정하고, 다정해서 몹시 아픈 그림책은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 들어 내 방을 갖게 된’ 한 여성에게 드리운 두 가닥 그넷줄에서 출발한다.

볕이 잘 드는 이층 방에서 마흔 살의 주인공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자루 속에 숨어있던, 허공에 매달려 살았던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이 방 안에 ‘예쁜 당신들 가버리고 미운 당신들만 남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춥고 낯선 방 안에서 밤마다 ‘정신 잃는 꿈’을 꾸는 주인공은 마흔 살의 여성이면서 스물일곱의 여성이고 일곱 살의, 어쩌면 일흔 살의 여성이다. ‘백만 번 전쟁한 것 같은’ 관계에 대해서 하나하나 들추어 열어보고 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나면서 ‘잘 팔리지도, 예쁘지도 않은 매일 똑같은 그림을’ 만드는 엄마를 이상하게만 쳐다보는 딸에게 못다 말해주었던 진심 어린 고백을 읊는다. 화집처럼 품격 있고 우아하지만 이야기는 우리 숨 곁에 할머니 품처럼 바짝 붙어 있다.

이 작품은 모든 연령, 모든 성별의 독자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엄마가 되었거나 그 일을 상상해본 사람이 더 먼저 느낄 것이다. 작가 윤석남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고 싶어서 화가가 되었고, 처음 붓을 들었던 마흔 살에 그녀는 이미 딸의 어머니였다. 이 책은 설치와 조각, 회화를 넘나들던 세계적인 작가 윤석남이 38년 만에 처음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윤석남의 ‘어머니’는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특정 성별이 자신들의 희생적 은신처로 흔하게 호명하는 그런 어머니가 아니다. 그림책 속의 여러 어머니는 저마다 더없이 다정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다정함이 어떤 날카로운 칼에 의해 베이면서 한 줄 한 줄 자신의 얼굴선을 그어왔는지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 그림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림책의 세계로 이끌어낸 아트디렉터 한성옥 작가도 또 한 사람의 다정한 어머니이자 여성이다. 탁월한 아트디렉터의 손을 거치면서 낱낱의 드로잉은 놀라운 여성 생애사로 재탄생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윤석남 화가의 작품 ‘금지구역’이 영국 테이트 컬렉션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에게 더 기쁜 소식은 ‘밥그릇 열두 개로 마술사가 되려다 실패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우리 곁에 그림책으로 간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지은 어린이 청소년 문학 평론가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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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푸근한 삶’을 담은 ‘자전적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