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우리 존재의 출발점인 우주는 과학의 세계인 동시에 무한한 경이로움 그리고 이야기의 세계이다. 사진은 국내에 우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우주는 어디서 시작되었고
빅뱅론의 실체는 무엇이고
외계생명체는 진짜 있을까

알면 알수록 혼란스럽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탐사여행
색다른 지적 즐거움도 선사

몇 년 사이에 읽을 만한 과학책이 제법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 그 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 나아가서는 책을 읽는 방식을 큐레이션하는 작업이 새삼 중요해졌다. 5권의 우주 과학책을 권하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을 권할 수도 있다. 가독성이 높은 재미있는 책만으로 5권을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 편견과 느낌의 흐름을 담은 책 목록을 제안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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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권하는 책은 ‘코스믹코믹’(아메데오 발비 글, 로사노 피치오니 그림, 김현주 옮김／푸른지식)이다. 만화책이다. 단순한 교양 만화책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키는 운치와 격조를 갖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만화책이다. 빅뱅우주론의 결정적인 관측적 증거인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표준우주론은 빅뱅우주론이다. 그렇게 정착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이 만화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를 찾기 위한 천문학자들의 계획된 노력을 무력화시킨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연한 우주배경복사 발견의 뒷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우연한 발견이 가져올 예측된 필연의 과정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코스믹코믹’을 통해 빅뱅우주론과 우주배경복사와 조금 친해졌다면 이어서 ‘우주의 기원 빅뱅’(사이먼 싱 지음, 곽영직 옮김 / 영림카디널)을 만나보면 좋겠다. 빅뱅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물리적 키워드인 ‘팽창우주’에 대한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다. ‘코스믹코믹’을 통해 만났던 낯익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그 책에서 시각적인 자극을 받았다면 ‘빅뱅’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결에서 느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분량이 충분하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빅뱅우주론의 태동에서부터 현재 상황까지 균형감 있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 담긴 과학사적인 내용은 ‘과학적’ 결과를 향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재미를 준다. 빅뱅우주론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기반에 대해서도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친절하게. 우리 시대의 우주의 기원과 진화와 미래에 대한 패러다임인 빅뱅우주론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적합한 책이 바로 ‘빅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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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눈을 돌려서 ‘외계생명체 탐사기’(이명현 외 4명 지음,／서해문집)로 가보려고 한다. 빅뱅우주론을 화두로 두 권의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우주 이야기는 늘 기원의 문제를 상기시키니까 말이다.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한 상상은 이내 ‘나’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문제로 치환되고는 한다. 이럴 때 ‘외계생명체’에 대한 책을 한 권 만나보면 어떨까. 외계생명체는 말 그대로 지구밖에 존재하는 (존재할지도 모르는) 생명을 통칭하는 말이다. 아직 외계생명체가 발견된 적은 없다. 물론 화성에서 외계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몇 년 내로 들려올 것으로 과학자들은 개연성 있게 기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발견된 적은 없다. 이 시점에서 왜 외계생명체 이야기를 하는가? 어쩌면 외계생명체를 찾는 작업이 우리 자신의 또 다른 궁극적인 극단을 찾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주 속 어느 곳에 또 다른 생명이 존재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 같은 존재가 또 있는가 하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외계생명체 탐사기’는 이런 질문에 대해 각 분야에서 외계생명체에 대한 화두를 잡고 활동하고 있는 5명의 국내 필자들이 쓴 고백서라고 하겠다.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하기도 하고 사변적인 철학적 담론을 던지기도 한다. 또 다른 ‘나’를 만나러 떠나보면 어떨까.

이쯤에서 ‘코스모스’(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사이언스북스)를 던져놓으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과학책 중 한 권이다. 일반인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쓰인 책이다. 하지만 만만한 책은 결코 아니다. ‘코스모스’에는 과학뿐 아니라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문화란 곧 삶이 형상화된 투영체일 테니 ‘코스모스’는 삶에 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냥 이 책을 읽는 것보다 워밍업을 좀 하고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3권의 책을 미리 만나면 많은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 질문의 도가니 속에서 ‘코스모스’를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이 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아마 더 많은 혼란과 더 많은 질문을 남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만족할 만한 지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책인 건 틀림없다.

‘코스모스’는 책으로만 읽지 말고 1980년에 나온 다큐멘터리와 2014년에 나온 시즌2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책과 다큐멘터리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짝이기 때문이다. 더 긴 이야기는 사족이 될 것 같다. ‘코스모스’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한편 생각에 생각을 낳게 하는 무거운 책이기도 하다. 지적 희열과 함께 피곤함을 감수하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쯤에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책으로 떠나보자. ‘별빛 방랑’(황인준 지음／사이언스북스)은 고향 같은 책이다. 천체사진가 황인준 작가가 10년 동안 찍은 천체 사진을 모아서 펴낸 사진집이다. 앞서 4권의 책과 함께 지적 여행을 즐겼다면 이제 다 내려놓고 별과 우주의 경이로움 속에 빠져보면 어떨까. ‘별빛 방랑’은 그런 과정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마력을 지닌 책이다. 안식을 주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 속에 나오는 몽골의 깨어질 듯한 밤하늘을 보면서 초원을 달려 몽골의 어느 들판에 우뚝 서 있을 수도 있다. 몇억 광년을 달려가서 어느 은하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을 수도 있다. 자 이제 우주의 경이로움을 가슴에 담기 위해 독서 여행을 떠나보자.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