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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다. 국가와 정부의 권위와 힘에 의해, 타당치 않은 법조차 강제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죽하면 소크라테스를 빌려, 그가 독배를 마신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활용되고 있겠는가. 그만큼 법은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필요한 시점에 제정돼야 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국회는 입법 무기력 또는 입법 만능 상태라는 극단성을 되풀이하고 있다. 필요한 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법이 늦어지거나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법은 충분한 검토 없이 소극적 동조 속에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이 대한민국 입법부의 민낯이다.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까닭 중 가장 나쁜 형태는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해를 법률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최근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나 면세점 특허를 5년 시한으로 제한하는 ‘관세법’이 그런 선례다. 국회 입법 기능의 한계나 부조화로 국내 통신시장을 아예 냉골로 만들어버리거나, 멀쩡한 매장을 폐업토록 해서 수많은 종사자를 한순간에 건물 밖으로 내몰아 버리는 부작용을 몰고 온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 목적이 타당한지,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한 법률인지 검토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것이 입법부인 국회의 일차적 책무다.

북한인권법 제정에도 그런 우려가 드러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2005년 처음 발의된 이래 11년을 허송했다. 그간 북한인권법 본연의 모습에 대한 논의와 검토 과정을 거쳐 왔다기보다, 여야 간 협상과 방치를 되풀이해 온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 관심과 상황적 필요에 따라 간신히 법안 통과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함께’란 단어의 위치를 둘러싼 이견으로 또다시 법안 통과에 난맥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히 용어의 위치 때문인지, 아니면 이를 핑계로 법안 통과를 늦추거나 아예 막으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대시킬 목적으로 만들려는 법이다. 북한 인권은 정치적 상황이나 통일 정책 등과는 무관하게 다뤄져야 하는 게 본질인 것이다. 2004년 제정된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보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 등을 골자로 하며, 북한인권특사 임명과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 관련 결의는 고문이나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우나 처벌, 자의적 구금과 같은 반(反)인권적 실태에 대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인권 본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북한인권법도 북한 인권 개선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북한인권대사 및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등을 규정하여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함께’라는 표현의 위치를 두고 통과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인권은 다른 정치적 이해나 목적으로 변곡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던 정파 또는 정치인들이 유독 북한인권법 통과에서는 다른 정치적 이유를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 대한민국 곳곳이 대형 현수막으로 덮여 있다. 저마다 지역민과 국가를 위해 최상의 인물임을 알려 자신이 제20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현수막이다. 새로운 임기의 국회를 바라보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당장 머리를 맞대고 입법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해나가는 것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