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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지난 연말 ‘준법 교육의 실종 원인과 해법’이라는 좌담회가 열렸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조촐한 행사였지만, 그 내용은 간단치 않았다. 21세기미래교육연합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7년 2월 교육과정 개정 이후 국내 고등학교 사회과목 교과서에서 ‘준법정신’과 ‘법질서’라는 단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 고교 사회과목에는 일반사회·한국사·경제·정치와 법 등 11종의 교과가 있고 교과마다 2∼8종의 검정도서가 있어 사회과목 교과서만 60여 종에 이른다. 그런데 대단원·소단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색인에도 60여 종의 사회 교과서 그 어디에서도 ‘준법’과 ‘법질서’란 단어를 찾을 수 없다. 2007년 이전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는 준법과 법질서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경위를 살펴보니 지난 2006년부터 교육계 내 일부 좌파성향 학자를 중심으로 교과내용에서 준법교육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논문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제기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준법교육은 현 체제를 당연시하도록 하고 비판적 사고를 못 하게 함으로써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이 수용된 때문인지 2007년 2월 개정된 교육과정에 근거해 발행된 고교 사회 교과서에선 ‘준법’과 ‘법질서’란 화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준법’이 사라진 자리에 2007년부터 ‘사회계층과 불평등’이 대단원으로 등장했다. ‘법질서’ 대신 ‘시민 불복종’이란 표현이 사회 교과서에 등장한 것도 그즈음이다. 이 같은 내용의 교육과정이 발표된 2007년 2월은 노무현정부 5년 임기 중 마지막 1년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노 정부가 물러나기 직전 어떤 의도를 갖고 교과서에 ‘대못’을 박아놓은 건지,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노 정부 이후 법치를 존중한다는 보수(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연거푸 들어섰지만 고교 사회 교과서의 준법·법질서 실종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과정 내용에도 ‘사회계층과 불평등’은 온존했지만 ‘준법정신’은 빠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법질서’를 유난히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의 폭력시위 직후 국무회의에선 “불법 폭력 시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하며 “불법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취임 일성이 ‘법치 실현’이었다. 그런데… 현재 고교 사회 교과서에선 ‘준법’과 ‘법질서’가 실종됐고 그 빈자리를 ‘시민 불복종’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 사회 교과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박 대통령이나 황 총리는 알고나 있는가.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은 민주시민의 책무다. 한상균은 범법자가 아니다.” 서울 도심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던 지난해 12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4개의 교수단체가 내놓은 성명서 내용 중 일부다. 고교 때부터 법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공격’의 대상으로 교육받아온 학생들이 대학 진학 후에는 이런 일부 교수의 선동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셈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법질서지수에서 한국이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7위에 그치는 이유도 이런 ‘준법 무시 교육’의 결과일지 모른다. 교과서를 편집·수정하는 교육부 편수실의 기능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넘어가는 시점과 준법정신이 교과서에서 빠지는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말로만 요란한 법질서 확립이 아닌 학교 현장에서의 준법교육 부활이 시급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법 경시가 만연해 ‘준법’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한국사 교과서만이 문제가 아니다. 검인정 교과과정에 대한 집필기준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전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교육 당국의 무관심 속에 편향되고 뒤틀린 채 방치되고 있는 또 다른 교과내용은 없는지 샅샅이 훑어봐야 한다. 미래세대가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과서라도 마련해주는 게 기성세대의 최소한의 책무다. 교육이 잘못되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