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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쇼쇼쇼 / 스티븐 풀 지음·정서진 옮김 / 따비

어제도 ‘쿡방’을 봤다. 키가 훌쩍 크고 잘생긴 남자들이 우르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본방송이었는지, 재방송이었는지는 어렴풋하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어차피 채널을 돌리면 ‘먹방’과 ‘쿡방’이 넘쳐나는 것을. 남자들은 셰프가 알려준 레시피를 응용해 스스로 음식을 만든다. 모양은 그럴싸한데 맛은 그저 그렇고, 어떤 것은 좀 짜고, 누구는 ‘셰프 뺨치게’ 만들기도 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요리를 직접 해볼 것도 아니면서 셰프의 손이 쓱싹쓱싹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는 채널을 바꾸기 힘들어진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 이 아파트 광고 문구는 한때 위화감을 조장한다며 비난의 화살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내가 타는 차가, 내가 입는 옷이, 내가 든 가방이 곧 ‘나 자신’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 위에 최근 식(食)이 올라섰다. 하루 세끼, 이 반복적인 행위가 집, 자동차, 그리고 옷보다 더 자신을 대변하는 ‘음식의 시대’가 도래한 것. 책은 이 현상, 즉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이 시대의 음식 문화를 파헤친다. 한 마디의 원제는 칼날 같다.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은 아니다.(You aren’t what you eat)”

책은 음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 강박 등이 문화 전반에 흐르는 시대를 고찰하기 위해 푸디즘(자연식품과 첨가물이 없는 식품에 관심을 가지는 일)부터 비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1980년대 유럽과 북미에서 생겨난 ‘푸디’, 즉 ‘요리 허식가’에 대해 “당신이 음식에 집착하는 사이에 수백만의 사람이 굶주려 죽는다”거나 “미국 인구의 15%가 푸드 스탬프(저소득층에 대한 미국의 식비지원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자의 푸디즘은 가당찮은 짓”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한국어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책은 미디어가 전파하는 푸디즘이 문화 그 자체에 끼치는 해악에 초점을 맞춘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철학에서 관념론이란 ‘머리가 되어 버린 배’이며 ‘강한 욕망’이 그 특징이라고 했다. 푸디즘이야말로 배, 위장의 욕망이며 그 결과 정신적인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다.”(35쪽)

저자는 “나도 쓰레기 같은 음식보다는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 그러나 평소에 음식을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중략) 누구나 음식을 그 자체로 즐길 수야 있겠지만, 전반적인 문화에서 감지되는 음식에 대한 지나친 몰두는 일종의 기행이나 퇴폐, 즉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며 심적 자원과 지적 자원을 탕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34쪽) 뉴욕의 유명 셰프 앤서니 보댕은 “누군가는 우리처럼 요리를 하거나 음식에 관해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지랄’을 부린다고 (정기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고 했다. 저자가 이를 자처했다.

책이 조목조목 파고드는 영역은 일상처럼 친숙한 개념들이다. 현대인에게 종교와도 같은 ‘솔(soul) 푸드’, 새로운 요리에 대한 열광, 어휘 연습이 필요한 어려운 메뉴판, 탐식을 성애화하는 음식 관련 표현들, 원조에 집착하는 심리, ‘자연식’이라는 미신, 가정식 요리책의 범람 등등…. 책에 따르면 음식에 의미, 심지어 초월성까지 부여하려는 현대의 갈망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즉 “푸디스트들이 사용하는 수사는 초기 우주처럼 급팽창을 겪었다”. 이 중 가장 히트를 친 게 바로 ‘솔 푸드’다.

책은 최근 먹는 것에 관한 안내서들이 제목에 ‘바이블’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 나열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정치가나 성직자를 신뢰하지 않는 대신, 요리사들이 우리에게 먹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시대 수많은 사람이 마치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스턴트 식품을 향해 혐오스럽다고 하고, 이를 먹는 이들을 무지하다고 몰아세우는 분위기는 본질을 왜곡한 푸디스트들에게서 나온다는 것. 보다 진지한 푸디스트가 되려면, 많은 사람이 매일 저녁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하고 싶어도 요리할 시간은 물론 정신적 에너지조차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들을 배제시키는 건 일종의 ‘존재론적 상처’에 가까운 것이기에.

“먹기 위해 사는 것은 개인주의적 소비지상주의의 극치이자 막다른 상태이다. 먹기 위해 사는 이들은 그들이 진정 진지하다 해도 삶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셈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이다.”(226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