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시한부 환자라고 죽여도 되나” …집유4년 선고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자친구를 마구 때린 뒤 성폭행한 30대가 연인 관계였던 점을 들어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으나, 재판부가 “그럼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은 죽여도 되는 것이냐”며 엄히 훈계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심우용)는 강간상해 혐의로 기소된 A(36) 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2014년 12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여자친구 B(26) 씨의 집에 들어가 성관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B 씨가 다음날로 예정된 눈 수술을 이유로 거부하자 A 씨는 욕설을 퍼부으며 B 씨를 수차례 때린 후 성폭행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 순간 화가 나 여자친구를 때렸을 뿐 성폭행하려 한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연인 사이여서 폭행이 없었더라도 B 씨가 성관계에 응했을 것이므로 폭행과 성관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A 씨 측은 또 “사건 이후에도 B 씨가 A 씨와 계속 연락을 하며 교제하는 등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인 점을 봐도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 씨는 폭행이 없더라도 성관계를 했을 것이므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고 주장하나 이는 시한부 환자를 살해할 경우 살해 행위가 없었더라도 환자가 사망할 것이므로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처럼 법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상적인 성폭행 피해자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범행의 고의성이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고 이는 사후적 사정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