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짧은 기간 동안 생태계 최고 포식자 자리에 오른 인류는 과학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 한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 김영사

변방의 유인원 호모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서 시작해 인류 시원부터 미래의 사이보그까지 인류의 빅 히스토리를 풀어내는 ‘사피엔스’는 논쟁적이고 도발적이다. 2011년 서른다섯의 젊은 이스라엘 역사학자가 내놓은 책은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되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인류학 경제학 역사학 생물학 심리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풀어내는 방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기존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지식의 빈 곳에선 상상력을 펼쳐낸다. 쉽게 읽히면서도 역사와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뜨겁다.

책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꽤 폭력적인 종이며 인류 문명은 행복 총량과는 비례하지 않게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를 생태학적 연쇄 살인범 그리고 중남미 후진국의 독재자에 비유한다. “인간의 몇몇 종들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들,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사바나의 패배자였던 호모사피엔스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찼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했다. 호모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 발을 들이면 그 뒤엔 엄청난 수의 대형 동물이 멸종했고, 같은 종에 속한 네안데르탈인을 상대로 인류 최초의 잔혹한 인종 청소도 단행했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는 상당 부분 이 같은 너무 빠른 도약 때문이었다.

농업혁명을 ‘인류의 거대한 사기’로 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인류는 풍요로운 수렵채취 시대에서 농업사회로 들어오면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게 됐고, 미래를 위한 가혹한 노동의 결과물인 잉여 생산물은 지배 엘리트 손에 넘어갔다.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겼고, 전염병에도 취약해졌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그 대가는 더 열악한 식사였다.

저자는 인류 역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대혁명을 3가지로 정리했다.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7만 년 전 인지혁명, 약 1만2000년 전의 농업혁명,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이렇게 진행된 발전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7가지 촉매제는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과 과학이다.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선 뒤 언어를 통해 사회공동체를 형성했고,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한다. 늘어난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는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들이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 중 하나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상상 속 존재와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허구의 이야기는 신화로, 종교로, 규범으로, 정치 시스템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인류사회를 이끌어 간다.

이어 과학혁명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성장, 글로벌화, 소비의 확대, 환경 파괴 등을 불러냈고 이제 그 바통은 생명공학혁명, 이른바 ‘길가메시 프로젝트’라는 미래 혁명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영생을 찾으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영웅 길가메시처럼 ‘영원한 생명’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이 프로젝트는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40억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자연선택이라는 구체제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명공학적 신인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보그가 등장할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과연 행복한가이다. “인지혁명 이래 험난했던 7만 년 세월은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는가? 오히려 새로운 발명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우리는 에덴의 낙원으로부터 몇 ㎞씩 멀어질 뿐이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이렇게 써내려간다. “한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한 세기 안에서 파괴적인 전쟁과 식민지배를 모두 겪었고, 매우 짧은 기간 만에 저개발 전통사회에서 선진 경제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첨단기술의 전도유망함과 더불어 위험도 두 배로 느끼고 있다.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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