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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기고

삼족정립(三足鼎立)이라는 말이 있다. 정(鼎)은 3개의 다리가 달린 솥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다. 정립(鼎立)은 ‘솥의 세 발처럼 서다’라는 뜻으로, 세 사람 또는 세 세력이 솥의 발과 같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국민안전처가 추구하는 안전정책의 방향을 정립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의 발은 정부(안전처)의 재난안전 총괄조정 역량 강화다. 또 하나의 발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과 역할이다. 세 번째 발은 국민 안전의식 수준이다. 이 세 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 발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국민 의식 발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 번째 발(국민 안전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민 안전의식은 제도 개선이나 규제 및 단속 강화로 단기간에 정착시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혹자들은 각종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다. 재난이 발생하면 소방, 해경 등이 초동대응을 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 일각에서는 안전처를 단순히 사고를 수습하는 부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안전처는 정부 유관부처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이 상호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대형 교통사고, 원자력사고, 화학물질사고 등 복잡한 재난을 예방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재난이나 사고 발생 시 대응, 수습, 복구 등이 안전처의 중요한 임무이지만 앞으로는 선제적인 예방이나 대비를 강화하는 부처로 체질을 개선할 계획이다.

우리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새로운 재난, 복합적인 재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재난관리를 수행하는 조직은 중간에서 질책을 받더라도 숙명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전처가 하는 일이 미흡한 점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안전처를 질책하는 건 좋으나 불 속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소방대원들에겐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어느 농부가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는 욕심으로 논에 심은 모를 잡아당겨 키를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벼는 모두 말라 죽었다.

바로 조장발묘(助長拔苗)의 고사성어다. 빠른 성과를 보려고 무리하게 다른 힘을 더해 도리어 그것을 해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보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