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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둘러싼 사회 갈등

지난 10월 8일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집을 만들고 있던 A(55) 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른바 ‘캣맘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벌인 것으로, 길고양이와는 무관하다고 밝혀졌지만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경찰은 캣맘에 대한 ‘증오범죄’로 추정했다. 사건 직후 인터넷상에는 캣맘과 길고양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매일 이어졌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캣맘사건으로 인해,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길고양이를 둘러싼 사회 갈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 길고양이 노린 증오범죄 증가 = 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 수가 몇 년 새 급격히 늘면서 길고양이를 상대로 한 증오범죄도 늘고 있다. 4일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대구에서는 20여 마리의 고양이가 죽은 채로 잇따라 발견됐다. 울산에서도 길고양이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7월에는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길고양이 10여 마리가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며 죽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는 누군가가 독극물 등을 이용해 길고양이를 고의적으로 죽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길고양이에 대한 불만과 혐오가 증가하면서 인터넷에는 ‘길고양이를 죽이는 방법’ 등에 대한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길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고 싶다”며 고양이를 죽이는 법에 대해 문의하는 글이 게시됐다. 또 다른 네티즌도 “고양이 소음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고양이 죽이는 법을 공공연하게 물었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귤이나 오렌지를 집 주변에 두라는 식의 합리적인 조언도 있었지만, 농약이나 부동액 등을 먹여 죽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답변도 눈에 띄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길고양이 등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학대행위를 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에는 길고양이를 집비둘기처럼 ‘유해동물’로 지정해 먹이를 주지 못하도록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길고양이의 개체 수 증가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유해동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사냥을 하는 고양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방법을 통해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0월 경기 용인시 한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집을 만들다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50대 여성이 숨진 사건이 발생, 길고양이에 대한 증오가 빚어낸 범죄라는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사건 현장 주변 화단에서 고양이들이 누군가가 놓아둔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캣맘·캣대디’…선행이 비난 대상 되기도 =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캣대디들도 최근 계속 늘고 있다.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이 지난 2014년 캣맘·캣대디 244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2%가 1∼5년의 경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캣대디의 선행이 길고양이의 번식을 돕는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캣맘 카페에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다 욕설을 듣거나 봉변을 당했다는 사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캣맘은 “길고양이 밥을 주다가 동네 주민들로부터 여러 번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면서 “고양이 밥을 줄 때마다 봉변을 당할까 봐 항상 긴장한다”고 말했다.

◇ 중성화(TNR) 사업, 길고양이 번식 막을 대안 될까 =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길고양이 관련 민원이 급증하자 몇 년 전부터 길고양이를 상대로 중성화(TNR·Trap-Neuter-Return)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시에 살고 있는 25만 마리(추정치)의 길고양이 가운데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는 전체의 10% 미만에 불과하다. 개체 수 증가를 멈추려면 중성화 비율이 70% 이상 돼야 하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수술 1건당 소요비용도 13만 원 정도로 비싸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중성화 수술이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지려면 지자체가 캣맘들과 유기적인 협조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중성화 수술은 건수보다 대상 선택이 중요하다”면서 “번식력이 좋은 고양이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이들의 생활 방식 등을 캣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서 “각 지역 캣맘들의 협조를 얻어 전략적으로 중성화 수술에 나서야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하는 지자체 = 길고양이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자 지자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는 최근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해 운영키로 하고 동물보호단체와 협의 중이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가로 60㎝·세로 1m 크기로 상자 안에는 사료와 물 등 길고양이의 먹이가 놓여있다. 포획틀도 함께 설치해 급식소를 찾는 고양이들을 상대로 중성화 수술도 할 계획이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협의가 끝나는 대로 서울숲·보라매공원·월드컵공원·용산가족공원 등 4곳에 30여 개가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급식소가 길고양이들의 번식을 오히려 돕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중성화 수술을 함께 진행하는 만큼 길고양이 문제 해결과 도시 환경 정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