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 역시 공직선거법이 설정한 내년 4·13 총선 획정안의 국회 제출 시한인 13일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과거 국회 소속일 때와 다름없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선거구 획정이 당리당략과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연·왜곡돼오던 악습을 시정하기 위해 국회는 5월 29일 선거법을 고쳐 획정위를 선관위 산하로 돌리면서 독립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실상은 ‘여야의 아바타’임이 드러났다.

이런 식이면 선거구 확정 법정 시한인 11월 13일도 넘기기 십상이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구역표 개정 시한으로 못 박은 12월 31일도 어길 수 있다. 제17∼19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안 의결일이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둔 2004년 2월 27일, 2008년 2월 15일 및 2012년 2월 27일이었던 악선례의 재연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국회의원 증원이라는 야당의 속셈까지 수시로 드러나고 있어 막판에 이르러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획정위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위원 9명 가운데 선관위 지명 1명을 제외하면 여야가 4명씩 나눠 선정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여야 대립의 축소판인데다 위원 개인이 선거와 정치에 줄을 댄 경우도 있다. 게다가 획정안 의결 정족수를 재적위원 3분의 2로 규정, 여야 대립 시엔 의사 결정이 불가능하다. 정당과 국회의원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 설립 취지를 구현하려면 이런 근원적 결함을 해소해야 한다. 아직 활동 여지가 남아 있다. 많은 실무검토가 이뤄진 만큼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해산(解散)하고 재구성해 논의를 매듭짓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