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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은 한글날이었다. 한글은 오늘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언어 중 창제자와 창제의도가 분명하게 밝혀진 유일한 문자이다. 문자(文字)란 행위(文)의 씨앗(字)이다. 인간은 문자를 통해 하나의 행위를 부호정보로 배태(胚胎)시키고 그것을 매개 삼아 다음 행위로 이행한다. 이는 마치 인체가 신경전달물질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신체행위를 구현해내는 것과도 같다. 매개가 정확하고 견고하지 못하면 행위와 행위 사이에는 늘 오해와 오류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구어체(口語體)보다 문어체(文語體)를 좀 더 격식을 갖춘 관계방식으로 통용하는 것은 문자가 머금고 있는 행위의 법칙성 때문이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는 속담처럼 합법칙적인 언어행위는 인간에게 육체적 건강 이상으로 중요한 사회적 건강성의 척도다. ‘문자에 내포된 행위의 법칙’을 여섯 갈래로 살펴본 것을 육서법(六書法)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행위 역시 이러한 문자의 파생규칙과도 같이 크게 여섯 갈래로 연관·구성된다.

약속을 할 때 ‘오후 2시에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앞 어느 건물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고, ‘2시쯤 그 근처에서 보자’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물건 하나를 찾더라도 ‘내 방 책상서랍 3번째 칸 안쪽에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그냥 ‘내 방에 있다’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사건을 명료하게 지시하는 기능에는 인간들마다 차이가 있다. 문자로는 이를 지사자(指事字)라고 하는데 동의생리학적으로 ‘궐음(厥陰)’이라는 센서가 이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일례로 중풍이나 치매와 같은 뇌혈류질환이 생기면 방향감각부터 어눌해진다. 풍(風)이란 무색유대(無色有對)라 하여 무형의 대칭성을 파악하게 하는 에너지원을 말하는데, 이 에너지원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인간은 공간 지각능력부터 떨어지게 된다.

또한 주변 분위기를 잘 파악(象)하고 묘사(形)하는 인간들이 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이모티콘을 재기발랄하게 잘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행위능력을 상형자(象形字)라고 하고, 인체는 ‘태음(太陰)’이라는 센서를 통해 이를 주관한다. 가령 직업적으로 이미지(象) 묘사(形)에 늘 몰입해야 하는 문학가들의 경우 호흡기나 소화기 기능이 온전치 못하다. 태음(太陰)이라는 인체센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행위를 할 때 대단히 실용적이고 직관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경우가 있고, 명분과 의미를 따져가며 논리에 맞게끔 하나하나 접점을 찾아가는 행위도 있다. 전자를 형성자(形聲字)라 하고, 후자를 회의자(會意字)라고 한다. 또한 하나의 행위를 중심에 두고 주변 맥락들을 파생시켜나가는 연역적 행위를 즐겨 하는 경우가 있고, 다양한 사례를 귀납적으로 경험해나가는 것을 즐겨 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를 전주자(轉注字)라 하고, 후자를 가차자(假借字)라 한다. 말과 몸과 뜻은 본래 하나의 행위다. 이 삼자가 일관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할 때 인간은 제 스스로 비루함(구업·口業)과 나약함(신업·身業)과 천박함(의업·意業)을 끊임없이 배태시킨다. 우리가 다시금 문자를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