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주인공을 보조하는 조연이 되거나, 지나가는 행인1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처럼 비록 누군가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행인1의 엑스트라일 수 있지만, 적어도 당사자의 인생 무대에서만큼은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만약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자신의 무대에 다른 사람을 대신 올려 보낸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MBC 수목미니시리즈 ‘그녀는 예뻤다’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드라마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던 여자 초등학생과 뚱뚱하고 못난 남자 초등학생이 완전히 정반대의 외모로 성장해 15년 만에 재회하는 과정에서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이 경쾌하게 전개된다. 김혜진(황정음)은 어린 시절 찬란하게 빛나는 주인공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다 수세미 같은 머리칼과 안면홍조 유전자가 뒤늦게 발현되면서 못난이로 변해버려 스스로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성적이 떨어져서 그저 그런 대학에 입학해 겨우 졸업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금과 보잘것없는 스펙의 취업준비생이라는 타이틀뿐이다.

화려한 주인공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엑스트라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소원은 기반이 탄탄한 회사의 월급쟁이로 취직하는 것이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평범하게 살던 그녀의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헤어졌던 초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오면서부터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약속 장소에서 그녀는 늘씬한 키와 빼어난 외모의 남자가 첫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한다. 대신 그녀는 외모와 몸매 모두 빼어난 미녀 친구에게 자신의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그를 실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환상을 차마 깰 수 없어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 가장 가까운 친구 민하리(고준희)를 올려 보낸 그녀는 첫사랑 앞에서 숨은 그림이 된다. 사춘기 전까지 또래 친구들보다 키는 작으면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못할 정도로 소심했던 모습에서 환골탈태해 완벽하게 멋진 남자로 나타난 지성준(박서준)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기에 선택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친구를 대타로 내세워 유학을 떠나게 됐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이야기한 뒤 상황을 정리하려 했던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끝난다. 친구 부탁으로 시작한 대타 역할이었지만 민하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성준을 사랑하게 돼 김혜진의 자리를 탐하게 됐기 때문이다. 민하리를 김혜진으로 알고 있는 지성준 또한 15년 만에 만난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랑과 우정을 넘나드는 위험한 줄타기가 시작됐지만,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김혜진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자리에서 전전긍긍한다. 게다가 미국에서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글로벌 패션 매거진 ‘더 모스트’의 뉴욕 본사 수석 에디터로 근무하던 지성준이 최연소 부편집장으로 스카우트된 한국판 ‘더 모스트’를 발행하는 진성매거진에 김혜진이 인턴사원으로 취직하면서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하게 꼬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첫사랑의 숨은그림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