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화현, 와호(臥虎), 장지에 채색, 2005

사춘기 시절의 이상형은 우울한 테리우스였다. 들장미소녀 캔디를 뒤에서 안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이라는 장면은 지금도 숨이 멎는다.

그러다가 코난의 밝은 성격으로 취향이 전환되더니, 못 말리는 짱구로 마무리되었다. 문득문득 가을이면 우수에 젖은 테리우스가 그립다.

김화현(1978년생)은 테리우스같이 순정만화풍의 남자들을 그린다. 한국화의 뛰어난 기량이 은근히 만화풍과 어울린다. 김 작가는 ‘여자 입장에서 남자를 그려요. 여자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알려면, 현재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그 윤곽을 더듬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실에선 아직 없는 것이니 당연히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고요. 제가 판타지적 남자를 그리는 것은, 그렇게 내가 무엇을 원한다, 없는 것을 원해도 된다는 자기 긍정과 확인의 과정입니다’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바라는 남자, 내 옆의 그분을 순정만화처럼 보아주면 어떨까? 눈에 콩깍지를 씌우면, 숱 적은 머리칼마저 테리우스처럼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현실에도 판타지가 필요하다.

선승혜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