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과정 뒷돈 챙기면 범죄
장부 빠진 작품 있을 가능성

국책은행의 미술품 수장고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금융당국의 특별감사 대상에 오를지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새누리당) 의원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서 제출받은 ‘미술품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장부에 취득가를 100원과 1000원으로 기록한 미술품은 각각 316점과 31점에 이른다. 장부가액을 모두 합하면 고작 6만2600원에 불과했다. 일례로 근대 화단의 대표적인 인물인 청전 이상범의 작품 3점 역시 모두 100원으로 적혀 있다. 미술품 경매 업체인 K옥션 대표를 지낸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는 문화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전의 작품은 많게는 억대까지 값이 나간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에 대해 “1980년 5월 14일 체계적인 관리를 시작하면서 최초 등재 시 취득금액이 불분명한 작품은 일괄 건당 100원으로, 부외자산(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자산) 중 취득경로가 불분명한 작품은 동산자산 잔존가액 최저가인 1000원으로 각각 적은 것”이라고만 김 의원 측에 해명했다. 1980년 5월 이전 취득한 작품의 경우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얼마를 주고 이들 미술품을 구매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술품 구매 및 관리 과정에서 부당한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장부에 빠져 있는 유실물은 없는지 등의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의원은 “특정 시기에 특정 작가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구매된 사례도 있다”면서 “미술품 가격을 부풀려 뒷돈을 챙기는 ‘미술품깡’ 등과 같은 범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금융당국이 특별감사를 통해 철저히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은 은행장 3명의 재임 시절 구매한 미술품(573점) 수가 전체(1099점)의 52%나 됐다. 특히 K 은행장 재임 시기의 미술품 취득금액(11억6700만 원)이 전체(32억4600만 원)의 35%나 차지했다. 기업은행의 경우에도 은행장 5명의 재임 시절 구매한 미술품(1013점) 수가 전체(1156점)의 88%나 됐다.

미술품 구매의 주요 사유가 점포 신설, 이전 등 환경개선인 점을 고려하면 지점에 전시돼야 하는 데도 본사와 수장고에 절반이나 보관돼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 수만 각각 206점과 151점으로 총 357점에 이른다. 국책은행의 미술품 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것은 미술품 구매 절차와 관리 기준이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