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더덕 재배로 연평균 매출 50억 원대를 올리고 있는 홍천산 더덕영농조합법인 직원들이 지난 9월 22일 강원 홍천군 홍천읍 와동리 작업장에서 더덕을 선별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부농 꿈’ 이룬 영농 노하우 - 홍천산 더덕영농조합법인

“별 이야깃거리도 없는데 여기까지 오시려고….” 취재 일정을 잡기 위해 송선진(47) 홍천산 더덕영농조합법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자 송 대표는 일감이 몰려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송 대표는 ‘더덕’으로 시골에서 기업을 이룬 대표적인 ‘부농(富農)’으로 꼽힌다. 요즘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해 국내산 농산물 가격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기업형 농장을 일군 영농조합법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라 송 대표의 경영 노하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덕 재배로 연 매출 50억 원’을 올리는 주인공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송 대표를 설득,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9월 22일 강원 홍천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홍천의 한적한 산골 국도를 한참 동안 들어가는 도중에 큰 창고가 눈에 띄었다. 홍천읍 와동리에 위치한 홍천산 더덕영농조합법인이었다. 창고 앞 너른 뜰에는 박스들이 쌓여 있고 지게차가 트럭에 박스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직접 지게차를 운전하던 송 대표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명절이 코앞이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대목을 앞둔 시점이어서 출하 전 선별작업도 쉴 틈 없이 이뤄졌다. 이 시기는 연중 가장 바쁜 때다. 창고 내부에서 중년의 직원 7∼8명이 넓은 선반에 놓인 더덕을 하나하나 골라내며 직접 무게를 달아 박스에 담고 있었다. 선별작업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더덕을 크기별로 나누고 정확한 무게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별한 더덕은 20∼30g 단위로 나눠 포장된다.

송 대표는 “서서 하는 게 능률적이어서 50분 일하고 10분 쉬면서 선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량이 집중되는 요즘은 하루에 4t∼5t 정도를 선별하고 있다. 이 조합법인에서 설·추석에 나가는 더덕은 대략 120t 정도다. 액수로는 20억 원이 넘는다. 출하되는 물량의 70%가 백화점과 대형마트로 간다. 특히 더덕의 경우 시기적으로 가을에 크기가 큰 상품이 나와 이맘때 수요가 집중된다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바쁘지만 돈이 들어올 생각을 하면 기쁘지 않으냐는 질문에 송 대표는 “그렇기는 하지만, 과거 왜 어려운 시기가 없었겠느냐”며 농사일이 쉽지 않음에 대해 토로했다.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창고도 있고 법인으로 영업하고 있지만 첫 시작은 초라했다. 지난 1992년 군 제대 후에 자산 300만 원으로 약 2만3000㎡(약 7000평) 밭을 임차해 더덕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엔 농사 경험도 별로 없고 더덕을 팔아 어떻게 목돈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은 다른 더덕 밭에서 나는 물량까지 수매하고 있지만 처음엔 날씨 등으로 인해 제때 출하를 못 한 적도 있었다. 또 애써 더덕을 출하했지만 받지 못한 미수금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2월엔 저온 창고 밖에 있던 자재하우스에 불이 나 13억 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몇 년에 걸쳐 쌓은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끔찍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식용 더덕의 가치를 높이는 송 대표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고, 자금력을 동원해 홍천지역 밭에서 재배되는 더덕을 대량 수매해 이를 도시 대형마트 등으로 팔 수 있도록 판로를 개척하는 등 그동안 기울인 엄청난 노력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다. 해발이 높고 기온이 서늘해 더덕을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홍천 지역 덕을 보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현재는 첫 시작의 20배인 46만2809㎡(약 14만 평) 밭에서 400t에 달하는 더덕을 매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는 세월호 침몰 사고 등의 영향으로 내수 경기가 좋지 않아 40억 원 정도에 그쳤지만 매년 평균 5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화재라는 극단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터라 조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조만간 이 창고 옆에 더덕 가공공장도 건설할 계획입니다. 더덕 가공공장이 가동되기 위해선 인력들도 더 필요하겠지요.”

평소 거래를 하는 대형마트 측이 가공 더덕을 요구하며 수매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때문이다. 송 대표는 가공공장에 30∼40여 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더덕 가공공장이 조그만 시골에 또 다른 일자리를 제공하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송 대표에게 “요즘 각종 FTA 체결 등으로 중국산 농산물 등 값싼 식자재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더덕도 피해를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중국산 더덕과 국산 홍천 더덕은 품질 면에서 비교되지 않는다”며 “맛과 식감 등에서 질 나쁜 중국산 더덕을 소비자들이 금세 구분하는 데다, 그런 더덕들과는 품질이나 가격에서 차별화가 이미 돼 있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또 “홍천 더덕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니까 도시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저희 더덕을 7년째 공급받고 있는 것”이라며 “농사 역시 사업이라 훌륭한 상품을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는다”고 전했다.

홍천 =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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