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올해 첫 단풍이 시작된 지난 9월 23일 두 중년 여성 등산객이 중청대피소 인근에서 단풍을 만끽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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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자주… 한달에 1번 골프”
“50대에 창업… 자존감 회복”
경제력 있으면 행복도 높아

노부모·자식 부양 부담 암초
자신에 대해 고민할 여유없어
큰일 없으면 행복하다 생각도

“어려울때 도움받을 친구있다”
72% 응답… OECD중 꼴찌
현실 순응 불안한 행복 많아

“현직에 있을 때보다 여유롭고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가족들과도 더 친밀해졌고요.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기계공학 공부도 뒤늦게 시작했지요.” 9월 23일 기자와 만난 퇴직 공무원 A (58) 씨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많은 사람이 퇴직 후 지인들과의 왕래도 줄이고 활동폭을 좁히는 데 비해 A씨는 현직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력을 뽐내고 있다. 올해 초엔 아내와 필리핀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대학생인 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인문계 출신이지만 평생교육기관에 등록해 늦깎이 기계공학도가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공부도 더 늦으면 못한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시작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설악산 등 국내 명산을 찾기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친구들과 골프 라운드에 나서 친목도 도모한다. 이렇듯 모든 일정을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소화하다 보니 절로 행복함을 느낀다고 A 씨는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만난 친구와 더 나이 먹기 전에 세계일주를 하기로 했고 곧 실행에 옮길 생각”이라며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황 그 자체가 행복인데 그렇게 보면 나는 지금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었다.

경기 용인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B(56) 씨는 다른 이들이 퇴직하는 시기인 50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40대까지 가정에서 육아에 전념해 왔던 B 씨는 남편의 퇴직과 자녀들의 대학 진학이 맞물린 상황에서 지난 2007년 남편과 함께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업 경험이 없었던 데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시작한 탓에 첫 2년 동안은 고전했다. 하지만 B 씨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특유의 친화력과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이겨냈다. 주 고객층인 주부들과는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사무실을 찾은 어르신들에겐 싹싹한 며느리처럼 대했다. 낯선 나라에 홀로 거주하게 된 외국인 고객들의 민원은 자기 일처럼 해결하고 살폈다. 사업 초기엔 컴퓨터로 서류를 만드는 일부터 생소했지만, 이제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고객관리를 할 정도로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익숙하게 다룬다. B 씨의 존재를 먼저 알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졌고 사업 또한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B 씨는 “하루에 만나고 통화하는 사람만 수십 명에 달할 정도로 바쁘지만 그런 업무 환경 속에서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행복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A 씨와 B 씨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 50대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50대를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 결과 ‘행복한 편이라고 느낀다’는 응답은 79.8%, ‘매우 행복하다고 느낀다’ 10.9%로 전반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응답이 90.7%였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50대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행복도’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인 만큼 주변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회의적인 시각은 또 다른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다양한 지표를 통해서도 추론할 수 있다. 올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과 러시아·브라질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2015)에 따르면, 한국은 11개 세부 평가부문 가운데 ‘사회적 연계’(Social Connections)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사회적 연계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척·친구 또는 이웃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데, 한국인은 72%만 “그런 사람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OECD 평균 88%보다 16%포인트 낮은 수치다. ‘일과 삶의 균형’은 36개국 중 33위였으며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0시간 이상인 노동자의 비율은 18.7%였다. 한국보다 이 비율이 더 높은 국가는 터키(40.9%), 멕시코(28.8%), 일본(22.3%)밖에 없었다. 이와 별개로 지난해 11월 OECD 조사 결과,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OECD 회원국 평균 1770시간보다 1.3배나 길다.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인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0년 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우리나라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OECD 평균(12명)의 두 배가 넘는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50대는 부모를 모시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끼인 세대여서 자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해 가족들에게 특별히 어려운 일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50대 중 불안한 상태에 있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