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일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는 김광석의 고향이자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소극장, 상설공연 등 ‘김광석 테마’가 가장 많은 곳이다. 지난 추석 연휴 전 시민들이 김광석 거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

(12) 가수 박창근이 본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길’

4년 전 김광석 노래로 뮤지컬 작품을 올리려던 즈음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일대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조성되고 있었다. 대구의 문화기획단체 ‘인디053’이라는 젊은 일꾼들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김광석 테마’를 살려 문명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던 동네를 재창조해내기 위한 노력이 그 첫 시작이었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초연으로 올려졌다. 2012년 11월 겨울 대구 방천시장 인근에 있는 떼아뜨르 분도소극장에서의 공연 첫 장면을 떠올렸다. 우울한 눈빛의 최동혁(극 중 인물)은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택시를 탄다. 넋을 잃은 그는 어디까지 가냐는 택시기사의 물음을 놓친다. 재차 묻는 말에 가까스로 답한다. “대봉동 방천시장으로 가주세요….”

김광석의 노래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최동혁 역을 맡았던 나는 생전 김광석의 너털웃음과 바보 같은 미소 뒤에 숨겨진 깊은 슬픔과 우울함에 초점을 맞춰 노래하고 연기했다. 제작진과 연출진이 고민하는 상업성, 즉 흥행의 문제에서 난 자유로웠다. 아니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내가 구축한 이미지를 인정받았다기보단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와 능력치를 이해시켰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진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품. 처음 대봉동 ‘김광석 길’은 이와 비슷했다. 다소 서툴지만 풋풋한 그림들과 특별한 것은 없지만 다정스러운, 세련되지 않았지만 소박한 맛이 있었다.

이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리모델링돼 좀 더 다채로워졌고, 현대식 카페도 적잖이 생겨났다. 김광석을 그려 놓은 그림들도 확실히 김광석과 더 닮아 있다. 벽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중간쯤에서 웃고 있는 김광석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즐거워 보인다. 거리엔 야외극장도 생겼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게다가 ‘제2의 김광석’을 표방하는 어떤 이가 최근 한 모창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그 가수의 이름을 딴 소극장과 상설공연도 만들어졌다. 이제 ‘김광석’은 이 동네 이윤 창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돼 보였다. ‘김광석 상품’은 앞으로도 더 발전될 가능성과 더 많은 잠재적 기회의 상황을 가지고 있는 보물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김광석 벽화 길에는 평일이었지만 이곳저곳에서 나들이 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하늘에서 내리는 햇살 가운데 여우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지인을 불러내어 차를 한잔 하며 물어봤다. “지금의 느낌이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우리 삶의 기억 안에는 ‘추억’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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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예전 모습 그대로의 골목을 군데군데 발견하면서 행복해했다. 김광석 벽화 길에서 올려다본 가을 하늘은 깊고 진했다. 벽화 길에서 방천시장으로 이어진 골목길에는 예전 모습 그대로의 떡집도 영업 중이었고 어린 김광석이 뛰어놀았을 좁다란 길에는 아직 남아 있는 낡은 가옥들 몇 채가 숨을 쉬고 있었다. ‘대동철공소’ 간판도 그 시절 모습처럼 남아 있다. (사실 김광석이 태어난 곳이 방천시장이라는 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의미가 확장된 지역으로서 상징적인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동행한 지인은 이따금 이런 광경을 보며 옛 생각에 조금은 들뜨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부조화하게 생겨나는 현대식 건물과 상점들로 리모델링되는 공간을 안타까워했다. 아마도 이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그의 추억이 빼앗기게 되는 데 대한 불안함이었는지 모른다. 옛것의 순박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가 융화될 순 없을까. 긴말 없이 나는 ‘조화’라는 단어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많은 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재해석과 그 가치를 다시 인정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한다. 그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고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김광석 선배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이따금 스스로 한계를 느껴 외로울 때 찾게 될 이곳이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고 길도 사라져 전혀 다른 곳이 돼 있는 것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는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정지돼 있는 기억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림을 그리듯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찾는 일이 나의 일상이 돼버린 것도 어쩌면 상실감에서 생겨난 버릇이 아닌가 싶다. 물론 창작의 소재가 과거의 기억만일 수는 없지만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더하고 덜하지 않은 유년의 기억은 참으로 신비하고 소중하다. 담벼락을 걸으며 내가 바라는 이 벽화 길에 대한 소망을 생각해 봤다. 이곳 대봉동의 소박한 동네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가수 김광석이 ‘단편적 우상’이 되어 관광상품으로 소비되는 거리가 되기보다는 세상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많은 ‘김광석’들이 그의 ‘추억’의 기억을 보상받을 수 있는 낡았지만 진심이 숨 쉬는 ‘다정한 동네’로의 질긴 생명력이 멋스러운 그런 곳, 그런 동네로 살아 있어 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대학 시절이었다. 길에서 마주친 포스터 하나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렇게 알게 된 가수가 김광석이었다. 20년도 더 지난 그때 그 밤거리, 살며시 불어오던 바람의 향기, 나의 낡은 신발, 향하고 있던 시선이 닿은 그 공간의 기억, 1990년대 초의 바람의 기억은 그렇게 아직도 생생하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 심한 몸살을 시작한 아이가 쭈뼛쭈뼛하며 선택한 공연장에는 무수한 김광석이 앉아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앞으로 다시는 김광석 같은 아티스트를 만날 수도, 탄생시킬 수도 없을 것이라고. 나 또한 공감한다. 그 공감은 뼈아프다. 김광석의 매력과 그의 진심의 가창력에 반한 많은 이들에게 그의 빈자리는 컸다. 시대가 만들어 주었고 그의 실력이 만들어 준 그만의 자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한 영향력이 이유였을까, 사후에 그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지는 이런저런 공연과 뮤지컬들과 상품들이 쏟아졌는데, 나 또한 그 내용들 안에 속하게 되면서 고민은 시작됐다. 그를 이렇게 추억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용납되는 일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런 것들을 다 차치하더라도 과연 ‘잘’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적잖이 고뇌로웠다. 김광석의 기타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항상 그의 소리를 감싸주고 받쳐 주었다. 혼자서도 무대가 꽉 찼고 어디서든 청중을 압도했다. 그 내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김광석은 김광석 자신이 되기 위해 무수한 반복과 노력, 혼자만의 고통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 시간의 양만큼 그는 성장했고 주어지는 어떤 무대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는 연주자이며 가수가 됐다. 그때 김광석이 표현해 놓은 음악은 이제 현장에서 그의 목소리로 만날 수 없다. 그 노래들의 반복은 다른 가수들, 다른 연주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불리고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대중은 그렇게라도 추억하고 싶어 했고, 위안 삼고 싶어 했다. 그렇다면 창작자가 김광석을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답은 ‘생존’하는 것이다. 스스로 음악의 깊이와 철학, 가치를 지켜 나가면서도 세상 안에서 소외되지 않고 대중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서 질기게 생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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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동 김광석 벽화 길을 나와 인근에 있는 후배 작업실 마당 한편에서 이 글을 쓰고 있을 즈음 낮의 여우비는 이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점차 굵어진 빗줄기로 성장했다. 뮤지컬에서 나는 자작곡을 몇 곡 발표했다. 그 노래들로 뮤지컬이 진행되는 중간에 어렵사리 음반도 만들었다. 그렇게 발표된 곡 중에 많은 사람이 기억해 주는 노래가 ‘바람의 기억’이다. 극 중 인물인 이풍세(대구 초연에서 최동혁이라는 인물은 이후 대학로로 옮겨 공연이 올려지면서 ‘이풍세’로 이름이 바뀐다)가 옛 친구들과 함께 다시 공연을 열고 부르게 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바람의 기억’은 지내 왔던 우리의 추억, 그 안에서 함께 상상하고 그려 왔던 꿈에 관한 기억이다. 바람의 기억은 그래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다시 불어오게 된 추억과 향수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풍세와 김광석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고민했고 답을 찾았다. 이풍세가 진실로 김광석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와 그 방식은 ‘음악’이었다. 처음도 음악이었고 끝도 음악이었다. 김광석 노래를 베껴 부르고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김광석처럼 진심으로 노래하고 진심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 했던 진짜 가수가 되길 원했던 사람. 때론 처절하고 때론 행복한 사람. 그 깊은 정서가 김광석과 닿아 있기를 나는 원했다. 관객들이 단순히 김광석을 추억하고 김광석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아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김광석이 느꼈던 세상을 향한 아픔, 그리고 힘들었을 자괴감, 슬픔과 불안함, 노래하면서 가졌던 행복들, 그 바람 같은 감성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풍세는 김광석처럼 어눌하다. 바보 같고 음악 이외에는 문외한이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는 오히려 이기적이었다. 풍세와 함께 울고 웃던 관객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나와 풍세의 진심을 알아주고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김광석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고 싶어 하듯이. 나는 김광석이 좋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진실했고, 음악에 있어서는 고집스러웠고 완벽했다. 또한 짧은 생이었지만 그만의 가치를 실현한 사람이었기에 더 존경한다.

이 글을 마칠 즈음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거칠다. 이 거？이 오히려 시원하게 내 가슴을 쓸어 내려준다. 오래전 그때 작은 공연장에서 김광석 선배가 해냈던 진심의 노래들, 그 표현의 생명력을 다시 생각하면서 내 삶의 고독한 여정에 한줄기 소나기처럼 해갈을 맛본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