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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가 따로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잔망스럽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것일 뿐인데 그것이 왜 나쁘냐는 어린아이의 울부짖음은 동물적 본능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한창 꿈과 희망에 부풀어 건강하게 성장해야 할 어린아이를 그토록 그악스러운 존재로 만들었을까.

MBC 주말특별기획 ‘내 딸, 금사월’은 시작부터 어른 뺨 칠 정도로 노련하면서도 원숙한 어린아이들의 말과 행동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상황들을 연출하면서 주목받은 드라마이다. 인간 원죄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죄는 반드시 제 손으로 씻어야 하는 게 삶의 천형이고 숙명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린아이의 악행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복수와 욕망 그리고 이기심이 뒤엉켜 만들어낸 지옥 같은 세상에서 저마다의 마음속에 품은 해같이 밝은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용서와 화해의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기획 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보육원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금사월(갈소원)과 오혜상(이나윤)은 엇갈린 운명의 주인공이 되면서 일생일대의 라이벌로 성장한다. 하지만 장보리가 그랬듯이 금사월은 언제나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오혜상의 악행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거나 받아넘긴다. 타이틀을 맡은 금사월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악행을 일삼은 오혜상은 마치 희대의 악녀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 부활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무서운 아이였다.

대통령 영부인이 참석하는 보육원 행사에서 자신이 아니라 금사월이 주목받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친구를 비난하는 오혜상의 행동은 악행 축에도 끼지 못한다. 신축 보육원이 부실공사 때문에 붕괴되고 그로 인해 친아버지로 밝혀진 보육원 원장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원장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가 끝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실시공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건설사 대표 강만후(손창민)의 회유에 넘어가 보육원 원장이 고스톱을 치느라 건물 붕괴 사고에 대처가 늦어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오혜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오혜상은 금사월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찢어버리고 자신을 딸로 알고 있는 오민호(박상원)의 집에 입양되어 양부모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면서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란 것을 숨긴다. 하지만 보육원 건물 붕괴 현장에서 살아남은 금사월이 자기 자리를 내놓으라는 악몽을 꾸는 등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일말의 죄책감은 남아 있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오혜상의 악행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17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금사월(백진희)과 오혜상(박세영)은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예고한다. 어린아이들의 잔혹동화는 끝나고 어른들의 잔혹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혜상의 악행이 연민정을 능가할지 여부보다, 우리 사회의 그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잔혹하게 만든 것인지 더 궁금하다. 욕하면서 시청하기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