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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 서울대 교수·경영학

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 소속 1037개 기업의 부채 총액이 1739조892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39조2840억 원이나 늘었다고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아 22일 공개한 ‘최근 5년간 주요 30대 기업 부채액’ 자료를 보면 이 가운데 부채 비율이 전년보다 높아진 16개 그룹의 부채만 모두 137조5000억 원이었다. 문제는, 이들 그룹 계열사 가운데는 비록 살아있긴 하지만 은행 대출로 연명(延命)하는,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는 ‘좀비기업’이 있다는 점이다.

또,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공개한 ‘구조 개혁의 키워드’ 보고서를 보면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은 2009년 2698개에서 지난해 3295개로 22%나 늘었다. 보고서는 한국이 독일·싱가포르처럼 과감한 개혁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으로 일본·이탈리아가 겪었던 정체와 퇴보의 길을 택할 것인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 경제의 환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좀비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먼저, 정책 당국자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해 인력을 줄이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비인기 정책을 추진해야 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오히려 지난 수년 동안 정부가 대출을 보증하고 국책은행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해 좀비기업의 수명을 연장하는 쪽이 훨씬 수월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좀비기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해도 시장에선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좀비기업에 수천억 원을 대출해준 국책은행의 최고책임자들 역시 굳이 자기가 재임하는 기간에 적극적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할 유인(誘因)이 별로 없다. 좀비기업에 대출을 해 준 경영자와 해당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하는 경영자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재임 기간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실현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부실기업은 300개를 넘어섰다.

좀비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와 직원들 역시 과감한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보다는 현상 유지 쪽이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좀비기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 좀비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부채의 대부분은 이자가 이자를 낳는 악성 부채들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들을 방치, 수명을 연장시키는 만큼 국민이 떠안아야 할 부채의 총액은 늘어난다. 이명박정부 때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미룬 결과 20조 원 가까운 자금을 들여 약 30개의 저축은행을 정리한 실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일수록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좀비기업에 대한 처리는 특정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려는 정치적 판단을 해선 안 된다. 좀비기업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에 도움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산업 내 경쟁 체제가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기를 수 없다.

환부를 적출(摘出)할 때는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게 척결(剔抉)해야 한다. 정책 당국과 정부는 악역을 회피하면 할수록 결국 수술 부위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