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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끝과 재킷 끝선 맞아야
셔츠는 약간 끼는 느낌으로
바지, 무릎 아래로 슬림하게

숱 적은 머리 시선 안쏠리게
화려한 구두로 과감한 연출
“패션있는 삶 … 자신감 가득”

“저한텐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까요?” “배가 좀 나왔는데, 가려지는 옷은 없나요?” “좀 더 젊어지고 싶어요.”

본지에 ‘그와 그녀의 취향’를 연재 중인 지승렬 씨가 종종 듣는 질문이다. 지 씨는 패션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내뿐 아니라 종종 외부로 패션 강연을 다닌다. 인터넷에서는 패션 블로거 ‘지테일’로 활약 중. 2주에 한 번씩 칼럼을 통해 ‘패션이 있는 삶’을 권유하는 그에게 ‘진짜’를 좀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바뀐 삶이 있느냐고. “그럼요!” 하더니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주 ‘스타일 4060’은 그의 상사 이야기다. 지금은 업계 멋쟁이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상호(43) LF 홍보팀 차장의 흑역사(?)를 지 씨가 공개했다. 이른바 ‘이 차장, 오빠 만들기’다. 흔히 패셔니스타와 패션 테러리스트는 ‘한 끗’ 차이라고 하는데, 이 차장의 변신 과정을 보면 적어도 ‘세 끗’은 된다.

◇ 유능한 이 차장, 옷차림 때문에 받던 오해와 무시 =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 아니냐며 투덜대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대표 사례로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한 남자가 있다. 마케팅 부서로 오기 전, 홍보팀에서 함께 근무한 이상호 차장이다.

이 차장은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굉장히 훌륭하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주말엔 자동차 정비를 배우며 긴 안목으로 인생 설계를 한다. 자신 뿐 아니라 후배들의 길도 함께 고민해주는 ‘좋은 상사’다. 하지만 겉모습은 영락없는 아저씨. 이마도 훤하고 배도 불뚝 나왔다.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40대 직장인. 그래서 패션 홍보를 담당한다고 말하기엔 약간 부끄러운 면도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파나마 햇만 써도 멋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난다. 지난 6월 유럽 여행 중인 이상호 차장.

나는 “한번 바꿔 보시죠”라고 끈질기게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마흔이 넘어 무슨 부귀영화 누린다고 패션이냐”고 하더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3년 전부터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 1단계 … 비즈니스 캐주얼의 중심, 벙벙한 재킷을 손보다 = 패션 초보가 한 번에 모든 차림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한 벌의 차림을 구성해 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이 차장에게 요즘 직장인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비즈니스 캐주얼 착장을 적용했다.

그의 옷들을 관찰한 결과, 나는 모든 재킷의 어깨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 어깨의 끝선과 옷의 끝선이 딱 맞아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딱딱한 패드가 들어간 옷을 헐렁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대부분 몸에 맞질 않았다. 새 재킷 한 벌은 꼭 필요했다. 맞춤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몸에 잘 맞는 걸로 골랐다. 그리고 약간 헐렁한 재킷 품을 몸에 맞춰 줄였고, 소매 끝은 팔을 편안하게 내렸을 때 엄지손가락 끝에서 10∼12㎝ 정도 위로 잡아 재단했다. 이때 안에 입는 셔츠는 끝이 약 1∼1.5㎝ 정도 보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 2단계 … 셔츠 목둘레·바짓단을 줄였다 = 이 차장은 목이 좀 두꺼운 편이다. 그래서 평소 목 둘레에 상당히 여유가 있는 셔츠를 입곤 했는데, 그런 차림이 인상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다. 본래 셔츠는 약간 끼는 느낌으로 입는 게 ‘잘 맞는’ 사이즈다. 애초 격식을 갖출 때 입는 옷이니 너무 편안하게 입으려고 하면 부자연스럽다. 바지는 무릎 아래부터 줄였다. 훨씬 날씬해 보인다. 또한, 밑단의 길이도 구두 굽 끝 선에 맞춰 짧게 조절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게 줄이기는 힘들다. 옷이라는 건 1㎝, 0.5㎝에도 큰 차이를 만들기에. 보통 여러 차례 수선의 수난사(?)를 겪어야 하지만, 경험이 많은 수선사를 만나면 고민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으니 아무 데나 맡기지 말 것.

◇ 3단계 … 벗겨진 머리, 화려한 구두로 시선을 뺏는다 = 벗겨진 머리는 인상이 강하다. 따라서 옷이 너무 수수하거나 단조로우면 머리로 시선이 더 잘 간다. 대부분 머리숱이 적은 남자들은 자신감을 잃고, 옷차림에도 소극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이 차장에게 난 영화 ‘킹스맨’으로 열풍이 분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앞 여밈을 깊게 하고, 두 줄의 단추를 달아 여미는 재킷)와 더블 몽크스트랩(버클이 두 개 달린 캐주얼한 느낌의 클래식 슈즈)을 고르게 했다.

머리카락, 그까짓게 뭐라고. 위로 쏠리던 시선이 옷과 구두로 분산됐다. ‘밸런스’라는 건 이런 거다.

◇ 4단계 … 멋진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이 멋쟁이가 된다 = 처음 한 벌에서 시작한 옷차림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패션이 성격과 태도를 바꿨다. 바짓단을 줄이고 ‘날씬’해진 이 차장은 어느 날 집에 있던 통이 넓고 긴 바지 스무 벌을 한꺼번에 수선을 맡기기도 했다. 그다음엔 재킷 차례. 이제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지만, 그는 쇼핑을 자주 하지 않는다. 안 입는 옷을 약간씩만 손봐서 입으니 경제적이다. 변신이 시작된 지 3년. 이젠 내 코치가 없어도 스스로 패션을 즐긴다.

특히, 최근 가족 여행에서 이 차장이 보여준 여행 차림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 차장은 “여행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 여행 중 입을 옷을 챙기는 것도 큰 기쁨 중 하나였다”고 고백했다. 아빠의 패션 센스는 이를 보고 자란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질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 40대 아빠 중, 옷까지 놓치지 않으며 여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패션의 완성’은, 그리고 ‘패션이 있는 삶’은 결코 얼굴과 몸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지승렬 LF브랜드마케팅 담당

정리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 = 지승렬·이상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