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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지난 2008년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미국. 리먼 사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수명을 다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글로벌 경제대국으로서의 미국 지위도 휘청거렸다. 반면 당시 연평균 10%의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두 배 격차로 따돌린 데 이어 조만간 미국마저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종말을 고하고, 세계질서의 패권을 중국이 장악하면서 본격적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그로부터 7년. 최근 눈앞에 펼쳐지는 G2(미국·중국)의 엇갈린 경제 현실 앞에 경제전문가들조차 충격으로 받아들이며 당혹해하고 있다. 팍스 시니카를 꿈꾸던 중국이 졸지에 글로벌 경제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골칫덩이로 전락한 반면, 미국은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면서 금리 인상 시점을 고민하는 상황이 됐다. 과연 어떤 차이가 두 경제대국의 운명을 이처럼 바꿔놓은 것일까.

먼저 중국부터 살펴보자. 중국 경제위기의 근원은 시장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온 뿌리 깊은 ‘관치(官治)’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이념 아래 국가 자본주의적 노선을 견지해온 중국이 통제 대상으로 여겨온 시장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게 요즘 중국 증시 현실이다. 관치에 중독돼 또 다른 증시부양책을 기대하며 정부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시장이 자생력을 회복하기는 힘들다. 경제의 불투명성에서 오는 불신도 문제다. 중국은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지만 서방의 12개 글로벌 투자은행이 추산하는 상반기 중국 성장률은 평균 6.3%다. 중국 정부가 올 7% 성장률 목표에 맞추기 위해 소위 ‘통계 마사지’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경제가 최근 급속히 둔화할 조짐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강도 높게 펼치고 있는 반부패 개혁 여파로 건설투자 등이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부패를 매개로 성장해온 경제가 지속성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경제를 들여다보자. 미국의 부활은 제조업이 이끌고 있다. 실제로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급격히 위축됐던 미국의 기업 설비투자는 최근 1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제조업 창업 증가율은 1993년 이후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꿈의 실업률’(5.2∼5.5%)에 근접해 있다. 미국경제의 이처럼 화려한 부활 배경에는 철저한 시장경제에 기반한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과 혁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친화 정책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의 진원지로 평가되는 셰일혁명이 한 예다. 지난해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최근 40달러 안팎으로 내려앉았지만 셰일업계에서 미국 업체들만 이 가격대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다. 글로벌 오일전쟁과 유가 급락 여파로 미국 내 수많은 중소 셰일업체들이 도산했지만, 부단한 진입과 퇴출 속에 창조적 파괴를 거치며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생산원가를 끌어내린 결과다.

미국 특유의 높은 노동시장 유연성은 지난 한 해 동안 29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기업의 복원력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기차와 태양광 소재 부품 등 차세대 유망 업종 투자에 대한 30% 세액 공제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제조업 육성정책은 기업 수익과 세수입 증대로 이어지면서 연방정부 재정적자 감소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의 선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전략이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다. 물론 한국 수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을 도외시한 한국경제 전략은 생각할 수 없다. 차이나 리스크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의 생존전략은 중국식 관치가 아니라, 미국식 시장경쟁과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경제의 독주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통과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한다. 이젠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도 미국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