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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0월 30일 현재의 선거구 인구편차가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선거구 개편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4월 13일 총선이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데다, 선거일 6개월 전까지는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의장에게 제출돼야 함을 생각하면 선거구 개편안 확정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선거구 개편 문제는, 국회의원 정수의 조정, 권역별 비례대표제,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 등 선거 제도와 관련한 다양한 개선안과 연계되면서 아직도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지난번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회법 개정을 연계했을 때처럼 시간에 쫓긴 졸속 개혁으로 후유증을 앓게 되지 않을까 하는우려도 나온다.

물론 선거구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마당에 해묵은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 없는 정치적 타협의 역기능 사례는 많다. 설령 내용상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바를 무시하고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제도를 개혁하려 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예컨대, 국회의원 정수 조정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우며,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비례대표제’ 자체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연방국가인 독일에서 주(州) 단위로 비례대표 선거를 하는 것이 왜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의 본질과 잘 맞지 않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도입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권역별 비례대표는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역색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경우 객관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제대로 갖춰졌는지가 항시 문제다. 인터넷 댓글처럼 조용한 다수의 목소리는 묻히고, 적극적인 소수가 마치 다수인 것처럼 오도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심지어 전략적인 투표를 통한 왜곡(歪曲)의 우려까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거 과열의 우려 때문에 미국과 달리 선거운동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우리의 실정을 생각하면 그 위험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정치권에서 선거보다 더 민감한 사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기 또한 뜨겁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다수의 대안이 기득권에 유리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오픈 프라이머리뿐만 아니라, 석패율 제도, 중선거구 제도 등도 역시 현역 의원 내지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이다.

물론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순수한 동기와 국회의 역량 강화를 위한 충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은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에는 서둘러서 제도를 개혁하려 할 게 아니라, 헌재 결정에 따른 최소한의 선거구 개편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만일 선거구 개편 시한을 핑계로 충분히 검토되지 않는 제도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그 부담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야 정치인들은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