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복구·군사작전 지원 등
관리업체 임명해야 하는데
총리실·안전처 파악도 못해
업체 지정도 자체기준 ‘모호’

공기업·방산업체·물류업체 등
담당 없어 네트워크 구축 안돼
벌금 있지만 징수 1건도 없어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초동대응 미숙으로 국가 안전·방역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가적 재난 상황이나 전시에 인력이나 물자 관리를 위한 법령(비상대비자원 관리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규모 자연재해와 전쟁 등 국가적 비상 상황을 대비해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공기업, 방위산업체, 방송·통신사, 교통·물류사 등에 일종의 비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지정 제도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상당수 주요 업체는 제외돼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관련 벌칙조항은 있지만 구체적 벌금 징수 절차 규정이 없는 등 제도적 보완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홍철호(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우선 비상·재난 대비 교육, 비축·동원 물자 관리 등의 임무를 맡은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지정을 위한 제도에서 허점이 지적됐다.

비상대비자원 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비상시 정부기능 유지, 재난 긴급복구, 국민생활 안정, 군사작전 지원 등을 위해 중점관리대상 업체를 지정할 수 있고, 이 중 일부를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임명대상 업체’로 지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특히 중요한 업체에 대해서는 비상대비 담당관을 둬 체계적인 관리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업체 지정 주체인 국무총리실이나 관련 주무부처인 국민안전처는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임명대상 업체 현황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안전처 관계자는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임용 대상업체의 법적 근거는 임의조항이라 의무적으로 비상대비 업무담당자를 임용해야 하는 대상 업체는 없다”고 해명했다.

업체 지정을 위한 기준도 모호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시행령에는 △국가 기반시설의 관리업체 △국가 중요시설의 관리업체 △공공기관 △재난의 긴급복구업체 △자원수송업체 및 방위산업체 △비상시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식품, 보건 및 금융에 관한 업체 중 업체의 규모와 부여된 임무의 중요성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하도록 돼 있지만 구체적 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소관 부처에서는 통상 200인 또는 300인 이상의 사업장, 일정 규모 이상 거래가 되는 기업 등을 자체 지정 기준으로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관련 법령에는 철도·통신 등 국가 기간시설 관련 공기업이나 방위산업체, 물류업체에는 비상대비 업무담당자를 두도록 규정돼 있지만 상당수 기관이나 업체에서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실에 따르면 항공정비 A업체, 지하철 관련 B·C업체, D교통공사, 케이블 방송사인 E업체, 방위산업체 F업체, 대형 물류업체인 G·H업체 등에는 비상대비 업무담당자가 없다. 이들은 380∼3100명의 직원을 보유한 업체로서 모두 국가적 기간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의원실이 임의로 파악한 문제 업체만 25개에 이른다. 의원실 관계자는 “실제 업체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칙조항은 있지만 세부지침은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비상대비자원 관리법에 따라 정부가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임명대상 업체로 지정한 후 담당자를 임명하지 않은 업체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돼 있지만 징수 절차나 운영지침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1984년에 제정된 후 30년이 넘는 기간 벌금 징수 실적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 의원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처가 재난·전시 대비 계획만 있고 실행은 부실하다”며 “비상대비 업무담당자 배치 현황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고 비상대비 업무담당자가 없는 업체에 대해서는 관련 행정절차를 밟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종 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