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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안산 단원고 1·2학년 재학생 학부모 10여 명은 지난 주말 경기도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학생들의 교실을 명예졸업식 때까지만 보존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 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단원고는 “졸업 때까지 2학년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라”는 진보성향 이재정 교육감의 방침에 따라 지난해 세월호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며 ‘추모관’으로 운용해 왔다. 그런데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명예졸업식 이후에도 교실이 계속 추모관으로 보존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자 학부모들이 교육 환경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다음 달 말이면 참사 500일이 된다. 온 국민이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모두 ‘내 탓’이라며 참회와 반성을 하던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다. 수백 명 어린 생명을 떠나보낸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야박할 수도 있는 모습이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전주에서,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칫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일각의 주장처럼 세월호의 ‘진실’을 은폐하려 드는 정부 당국이 세월호 갈등의 주범일까. 찬찬히 따져보자. 세월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검찰 수사에 이어 법원에서의 1·2심이 대부분 매듭지어지면서 최종 대법원 판단만 남겨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 선장에 대해선 대형 인명사고와 관련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처음으로 적용됐고,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돼 구조업무 현장지휘관에게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됐다. 정부는 9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감수하고 세월호 인양을 결정했고, 우선협상자도 선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라”는 세월호 단체들의 시위와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진실을 원하는가. 그들이 주장하는 ‘세월호 진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일명 ‘사라진 7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논란과 관련해 관저에 머물며 21차례 서면과 유선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그들에겐 마이동풍이다. 세월호 집회에선 “세월호 사고 당시 박 대통령이 마약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 “성형시술 탓에 대통령이 곧바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라는 등 막말 수준의 각종 괴담이 여과 없이 쏟아진다.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세월호 갈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음습한 정치적 노림수도 엿보인다. 세월호 충격을 지속시키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활동기간이 1년으로 정해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개시일과 관련해 정부는 올 초 이미 시작됐다고 밝혔지만, 야권에선 인적 구성이 마무리된(7월 말∼8월 초 예상) 이후 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월호 사건 2주년을 불과 3일 앞두고 치러지는 내년 4월 총선은 세월호 단체의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세월호 특조위의 거친 정치공세 협공 속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특조위의 활동기간을 세월호가 인양된 후 6개월까지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이 최근 야당 의원 41명 공동 명의로 발의됐다. 2017년 대통령선거까지 ‘세월호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진도군 팽목항 주민들이 항구 주변에 설치된 세월호 리본 철거 탄원서를 제출한 데 이어, 전주지역에서도 도심 곳곳에 1년 넘게 걸려 있는 1500여 개에 달하는 세월호 관련 현수막을 떼어 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피 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 입장에선 무척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정도 했으면 됐다”는 국민의 세월호 피로감도 갈수록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이젠 세월호 유가족들을 놓아줘야 한다.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길은 그들과 함께 머리띠를 묶고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생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데 있다. 이 참혹한 유가족의 슬픔마저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드는 이들이 있다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