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빌카밤바 마을 초입의 안내판, 100세인 남성이 평온한 얼굴로 안데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삼인 제공

영원한 젊음 / 리카르도 콜레르 지음, 최유정 옮김 / 삼인

늙고 병들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 빌카밤바 노인들의 삶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남미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골짜기에 있는 빌카밤바 마을을 찾은 저자에게 꾸준히 따라다닌 의문이다. 해발 1500m 평균기온 섭씨 20도에 인구 4200명인 빌카밤바에서는 주민들이 백 살, 백열 살, 백스무 살, 아니 백마흔 살까지 산다. 그들은 단지 오래 살 뿐 아니라 백 살이 넘어서도 안경 없이 글을 읽고, 이빨도 튼튼하다. 또 왕성한 기력으로 성행위를 즐긴다. 반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70대에 벌써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아버지가 있다.

의사이며, 저술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빌카밤바에서 주민들에게 계속 묻는다. 장수 비결이 노화를 예방해주는 식습관 때문인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환경 때문인지, 노인들의 존엄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대가족제도 때문인지.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모두 ‘노(No)’다. 오히려 노인들은 담배는 물론이고 마리화나를 연상시키는 마약 차미코를 즐기고, 럼보다 더 독한 술 푸로를 마신다.

단지 한 가지 저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빌카밤바에서는 인간도 짐승도 모두 오래 산다는 것이다. 개의 평균 수명도 25년을 넘는다. 그런데 마을 밖으로 나가면 빌카밤바 원주민도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명이 짧아지며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못 밝힌다. 결국 저자는 섭생이나 기대수명을 높이는 일에 관한 현재 우리의 지식수준은 빌카밤바 골짜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수마을에서 보고 들은 100세 노인들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투병생활과 교차되며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상념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생각할 때 유기체의 시간은 연대기적이지 않다. 달력이 가리키는 나이는 우리 모두에게 정확히 똑같이 기능하지 않는다. 그래서 쉰 살 동갑내기 두 명이 서로 다른 나이로 보이기도 한다. 각각의 유기체에게는 저마다 특수한 시간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물리적인 수명에 집착하며 빌카밤바 마을로 몰려드는 현대인들에게 냉소를 던진다. 그는 만일 삶이 지향하는 깃발이 언제나 건강을 조심하는 것이었다면, 만일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만이 온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면 인류는 역사를 가질 수 없었거나 가졌다 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역사이고 말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특별한 노력 없이도 건강과 활력이 허락된, 수수께끼에 싸인 마을을 돌아보며 건강을 위해 오늘 잘 작동하는 이론은 바로 예방이고, 지나친 예방은 무언가를 조금 더 헝클어트리는 만큼 비록 답은 못 찾았어도 부디 빌카밤바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기를, 예를 들어 지나치게 금욕적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더 오래 살 방법이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는 수명은 양적 길이가 아니라 그 질적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마무리 부분에서 슬그머니 드러낸다. 아버지의 살아온 이력을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으로 여겨진다. ‘경제학박사,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재만화작가, 예비역 준장, 무도회장의 춤꾼, 그리고 애지중지 사랑받은 아들, 동시에 우리 아버지’. 그리고 저자는 애초에 든 의문에 대해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린다. “내가 빌카밤바의 노인들과 우리 아버지 사이에서 찾을 수 있었던 여러 차이점에 한 가지 더할 것이 있다. 빌카밤바의 주민들은 좋은 건강을 유지하며, 100년 이상을 산다. 우리 아버지는 불멸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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