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크레이지 러브’의 한 장면. 이 코너는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인 후 인기를 얻었지만 7개월 만에 종방됐다. KBS 제공

새로운 아이디어 쏟아내지만 제작진 앞에서 탈락 부지기수

종편·스마트폰 등 볼거리 많아… 개그 프로그램 시청률 ‘반토막’

인기 얻고 나면 개그맨 제 갈길… 재출연 막는 폐쇄적 문화 문제

2006년 9월 마지막 주, 지상파 방송사는 ‘개그 삼국지’를 벌이고 있었다. KBS 2TV ‘개그콘서트’가 시청률 22.3%(TNS미디어코리아 기준)로 선두였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16.1%로 그 뒤를 이었다. 후발주자인 MBC ‘개그야’도 12.8%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당시 세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 합은 무려 51.2%. 개그 프로그램의 중흥기였다. 2015년 7월 셋째 주.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시청률은 각각 11.2%(TNMS 기준)와 5.5%였다. MBC는 지난해 4월 ‘코미디에 빠지다’가 종방된 후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고 있다.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송되는 ‘코미디 빅리그’ 시청률 역시 3% 정도다. 세 프로그램의 시청률 합은 19.7%. 개그 프로그램 위기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아이디어가 없다?

‘개그 콘서트’는 1999년 첫 등장 이후 16년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개그 콘서트’에 맞서기 위해 SBS가 2003년 선보인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2010년 폐지됐지만, 2013년 ‘개그 투나잇’으로 부활한 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 역시 SBS에서 10년을 지킨 브랜드다. 각 회당 소개되는 코너 수는 15∼20개. 장기 코너도 있지만 단명하는 코너까지 포함하면 1년에 40개 안팎의 코너가 소개된다. 이렇게 10년 넘게 끌어오다 보니 개그맨들은 새로운 코너를 구상할 때마다 난관에 부딪힌다. ‘개그 콘서트’에 출연 중인 한 중견 개그맨은 “실제로는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코너로 제작되지만 제작진 앞에서 평가받는 단계 중 탈락해 아예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코너도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즉, 아이디어가 없다기보다는 피해가야 할 산이 많아진 셈이다. 이 개그맨은 “‘재미가 없다’는 평가보다 더 가혹한 것은 ‘베꼈다’는 평가”라며 “창작은 개그의 생명이기 때문에 완벽히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넣으려는 노력의 연속”이라고 덧붙였다.

◇장수 코너, 대표 코너가 없다?

‘개그 콘서트’를 보며 많은 이들이 말한다. “‘달인’ 같은 코너 이제 없나?” 2007년 말부터 2011년까지 4년간 방송된 ‘달인’은 ‘개그 콘서트’를 대표하는 장수 코너였다. 이 외에도 ‘봉숭아학당’, ‘집으로’ 등이 장기 방송됐고,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역시 ‘나몰라 패밀리’, ‘웅이 아버지’ 등이 장기간 사랑받았다. ‘개그야’ 역시 김미려가 출연한 ‘사모님’과 ‘죄민수’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던 ‘별을 쏘다’가 여전히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 ‘개그 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 코너는 방송을 시작한 지 6개월 미만이다. ‘개그 콘서트’의 ‘닭치고’와 ‘렛 잇 비’ 정도가 1년 남짓 방송됐을 뿐이다. 제작진은 매체 환경과 시청자 수용 행태 변화에서 이유를 찾는다. ‘개그 콘서트’를 담당하는 이재우 팀장은 “코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점점 더 빨리 싫증을 느끼고 있다”며“업계 환경에 맞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나 콘텐츠 공급으로 플랫폼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그 프로그램 시청률의 하락은 지상파 방송사 영향력의 약화와도 연결된다.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이 빠르게 사세를 넓히고 있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볼거리도 많아졌다.

◇스타가 없다?

스타의 부재도 개그 프로그램이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개그 콘서트’는 스타 사관학교다. 유세윤, 장동민, 정형돈, 김영철, 강유미, 이수근, 안영미 등이 모두 ‘개그 콘서트’를 기반으로 인기를 쌓고 MC로 나서거나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빛을 봤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개그 콘서트’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몸값이 뛴 그들이 개그 프로그램 출연을 꺼린다고 할 수만도 없다. 유세윤, 장동민은 tvN ‘코미디 빅리그’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하지만 ‘개그 콘서트’에는 갈 수 없다. ‘개그 콘서트’는 순혈주의를 강조한다. 공채 개그맨 위주로 프로그램을 꾸리고, 연차가 낮은 개그맨들은 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 타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은 언감생심이다. 몇몇 개그맨들은 인기를 얻은 후 타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미운털’이 박혀 ‘개그 콘서트’에 출연할 수 없게 된 경우도 있다. 스타를 지키지 못한 것은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코미디 빅리그’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상준, 김기욱, 양세형, 양세찬, 이진호 등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개그를 시작했다. 하지만 SBS가 시청률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2010년 개그프로그램을 폐지한 후 둥지를 옮겼다. 어렵게 tvN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이 다시 SBS로 돌아가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