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꽃가지에 앉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이 연속으로 담겼다. 한솔수북 제공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 만물은 모두 흐르고 움직이며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어제의 한강은 결코 오늘의 한강이 아니다.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존재이면서 주위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어린이다. 변화를 주목하는 어린이의 하루하루는 긴장감 넘치지만 풍요롭다.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자신의 앞에 놓여있을지 두근두근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시작 다음’(안느 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 그림 / 한솔수북)은 그런 어린이의 마음과 꼭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도토리 한 알 시작, 그 다음 아름드리 나무와 같은 자연의 변화부터 로켓 발사 시작, 다음에는 달 표면 도착, 우유·달걀·설탕·밀가루·딸기 시작, 다음은 딸기 케이크와 같은 거리의 이동이나 물리적 변화, 거미 한 마리 시작, 달빛 아래 빛나는 거대한 거미줄 세상과 같은 역사적 변화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변화를 다룬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변화의 스펙트럼은 더욱 복합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책은 변화뿐만 아니라 ‘연결’에 관한 그림책이기도 하다. 비둘기에게서 떨어져 나온 깃털 한 가닥이 깃털 펜이 되고 타이프라이터가 그 펜을 대체하는 다음 장면은 다시 그 타이프라이터로 쓴 편지를 비둘기가 물어나르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항공우편의 비둘기 그림 우표로 마무리된다. 살아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이루어낸 것과 허물어지는 것, 도착한 것과 떠나는 것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광경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으면 날마다 그저 그런 것 같았던 우리의 삶이 이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쉼 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책은 호기심 많은 변화의 추종자인 어린이를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하나도 다를 게 없어’라고 무기력하게 낙담하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부서져 내린 벽돌은 다시금 견고한 담장이 되고 한 줄도 긋지 못할 것처럼 막막하게 놓인 화가의 백지에는 두려움을 이겨낸 그림 한 폭이 생겨난다. 잊어지는 것은 지푸라기가 바람에 날리듯 자연스러운 것이며 새로운 사랑은 다음 신호등처럼 반드시 불을 켜며 찾아온다.

2015년 볼로냐 도서전 라가치상의 논픽션부문 대상 수상작인 이 책의 한 줄 심사평은 정확하게 책의 감상을 전한다. ‘끝까지 보고 나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진다.’ 삶은 되돌릴 수 없지만 삶에 대한 생각은 되돌릴 수 있고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다음의 지혜다.

김지은 어린이 청소년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