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피터 멘델선드 창작품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 카프카의 ‘변신’, 벤 마커스의 ‘플레임 알파벳’ 표지(왼쪽부터). 이 책 ‘커버’의 표지는 멘델선드와 파블로 델칸이 함께 만들었다.

커버(Cover) / 피터 멘델선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표지(表紙)는 책의 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포장이다.”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표지(책)’에 대한 단조로운 설명이다. 피터 멘델선드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픽’하고 실소를 머금을 것 같다. 멘델선드는 현재 미국의 대형 출판사 크노프(Knopf)의 부(副) 아트디렉터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11년 전 30대 초반의 나이로 북디자인의 세계에 뛰어든 후 600권이 넘는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며 미국 출판계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북디자이너로 성공했다.

그는 적어도 책의 쪽을 보호하기 위해 표지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1968년 혁명의 벽보들과 담벼락에서 영감을 받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 표지 디자인을 만들었다. 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혁명적이었던 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표지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의) 충격적인 성공은 아마도 눈길을 끄는 표지 덕분일지도…”라고 평했다. 카프카 전집의 표지는 모두 ‘눈(目)’을 모티프로 해 팝아트 같은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를 입혔다. 소설가 제인 멘델손은 이에 대해 “표지에서 눈의 사용은 카프카의 심오한 시각적 감수성을 잘 포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성공적인 표지는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첫 권 ‘용 문신을 한 소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 국내 번역)다. 거의 70종의 시안 디자인을 내놓은 끝에 결정된 이 형광빛 문신 이미지 표지의 책은 약 1000만 부가 팔렸다.

멘델선드에게 책 표지 디자인이란, 그저 책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 이상이다. 그는 책의 숨은 의미를 디자이너가 찾아야 하고 ‘본질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번역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그가 디자인한 표지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뿐 아니라 창작 방법 모음, 스케치, 일러스트레이션 등에서부터 거절당한 표지 시안까지 실려 있다. 또 표지에 대한 단상들, 책의 저자들이 기고한 글들도 함께 수록돼 있다.

피터 멘델선드가 말하는 ‘책 표지란 무엇인가’.

1. 표지는 피부다 : 책에 고유한 ‘얼굴’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2. 표지는 프레임이다 : 표지는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3. 표지는 기념품, 부적, 정표다 : ‘독서’에서 가지고 돌아온 기념품이기 때문에.

4. 표지는 안내데스크다 : 제목이 무엇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알려주니까.

5. 표지는 장식이다 : 인테리어 소품으로서.

6. 표지는 이름표, 비밀 악수다 :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을 형성.

7. 표지는 예고편이다 : 표지를 보고 책을 산 사람들이라면 이 예고편에 낚인 것이다.

8. 표지는 트로피다 : “내가 읽은 것 좀 봐!”

9. 표지는 서커스 호객꾼, 광고판이다 : 판매자의 입장에서.

10. 표지는 번역이다 : 표지는 책의 공연이고, 해석이고, 연기이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