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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리처드 포드는 몇 년 전, 만이 굽어보이고 하얀 난간이 있는 베란다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서 한 사내를 만납니다. 하얀 덕 바지, 푸른 리넨 블레이저 셔츠에 비싼 슈즈를 신은 그는 파티 호스트로 싹싹하면서도 머리 회전이 빠른 적당한 교양인이었습니다. 은퇴할 나이도 아닌데 돈이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 사내가 궁금했던 작가는 참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과는 담을 쌓고 지냅니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작가라고 하셨지요. 당신도 나만큼 일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겠군요.” 글 쓰는 일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주변 관습에 대해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속으론 공감해온 그이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부러움인가, 질투심인가, 마음의 길을 따라가보던 그는 길의 끝에서 아버지를 만납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여행사 영업 사원이었습니다. 대공황 여파가 한창이던 1935년 일자리를 얻어 1960년 죽는 날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보수도 좋지 않고 매일 똑같은 반복이었지만, 그 일은 가족의 생계를 보장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에겐 심리적 위안과 도덕적 자부심을 안겨줬습니다. 이어 그는 정시에 출근해 일을 끝내야 하고, 때로는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고, 넌더리가 나서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지만 밥벌이를 위해 직장에 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칵테일 파티에서 만난 사내와 일에 대한 생각을 소설로 쓰려던 그는 방향을 바꿔 여러 작가들이 일에 대해 쓴 단편들을 모아보기로 합니다. ‘일은 소설에 맡기고 휴가를 떠나요’(홍시·원제 Blue Collar, White Collar, No Collar)입니다. 책에는 앨리스 먼로, 조이스 캐럴 오츠, 애니 프루 등 작가 32명이 일에 대해, 혹은 일에 뛰어든 주인공의 삶에 대해 쓴 단편 32편이 묶여 있습니다.

휴가시즌입니다. 제목이 추천하는 대로 휴가지에서 조금은 여유있게 읽으며 일에 대해, 떠나온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지요. 휴가까지 가서 일을 생각하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여행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여행은 또 다른 일상이 되겠지요. 움베르토 에코도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론화할 수 없는 것들을 픽션으로 풀어낸다”고 말했습니다. 여행 가방에 던져둔 한 권의 소설로, 우리가 평소 끙끙 앓지만 머리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