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 전승훈 기자 jeon@

포이즌필, 기존 주주에게 긴급 저가 매수권
차등의결권, 경영진 1주에 1의결권 이상 부여
황금주제도, 1주만 있어도 의사결정권‘슈퍼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제2, 제3의 엘리엇’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재계를 중심으로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한국이 ‘해외 투기자본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투기성 해외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현 상황을 더는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주식 1주라도 의결권을 달리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국내 30대 기업 사장단은 지난 9일 공동성명을 내고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은 해외자본의 공격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외국 투기자본의 천국”이라며 “균형 잡힌 지배구조와 경영권 방어수단 마련을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경제 단체와 뜻을 모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우리 기업의 방어 수단이 미흡해 기업이 상장을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2003년 SK와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 후 해외 투기자본에 맞설 수 있는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싸게 신주를 살 수 있는 포이즌 필(신주예약권), 대주주를 비롯한 일부 주주에게 일반 주주보다 의결권을 많이 주는 차등의결권주, 특정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인 황금주 제도 등이다.

◇포이즌필 =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투기자본이 주식을 매집하고 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저렴한 신주를 매수해 그만큼 투기자본의 영향력을 희석해버리는 방법이다. 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 등 선진 자본 시장에는 이미 널리 보급된 제도다. 미국은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M&A가 기승을 부리자 1982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법률상 근거나 정관의 규정 없이도 이사회는 언제든지 포이즌필을 발행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절반 정도가 정관에 이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2005년 신주예약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이즌필을 도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일본의 사례는 기우였음을 나타냈다. 일본은 포이즌필 제도를 도입했지만 2006년 말 외국인 투자 비중은 오히려 역대 최고인 28%를 기록했다. 국내 재계가 경영권 방어 장치로 도입을 요청하고 있는 포이즌필의 경우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0년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에 악용될 수 있다는 국회와 시민단체 반대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 = 주식에 따라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차등의결권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은 대부분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주식을 보유한 오너 일가는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면서 장기적 목표에 따라 경영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실제로 구글을 비롯해 나이키, 포드, 발렌베리 재단 등 글로벌 기업 상당수가 이 제도를 도입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구축하고 있다. 구글은 2004년 상장 당시 1주당 1개의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인정되는 클래스B 주식을 발행했다. 클래스 B주식은 대부분 경영진이 가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밋 CEO 등은 시장에 공개하지 않은 클래스B 주식의 92.5%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구글 의결권의 60.1%를 행사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도 1주당 10주 의결권을 갖고 있다. 구글 시가총액이 상장 당시 230억 달러에서 10년 만에 4000억 달러로 급등한 배경 중 하나는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통한 경영권 안정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도 홍콩거래소 상장을 추진하다 거래소 측이 ‘1주 1의결권 정책’을 근거로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가하지 않자 2014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사례가 있다.

◇황금주 제도 =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영국·프랑스·일본 등이 도입한 황금주는 1주의 주식만 보유하고 있더라도 기업의 주요 안건에 의사결정 권리를 주는 특별주식을 가리키며 지배주주에게 M&A 같은 주요 사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 거부권을 주는 것이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