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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 논설위원

4월에 개봉한 영화 ‘스틸 앨리스’를 보면 똑똑한 언어학 교수 앨리스가 50대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언어학 교수가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치매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음을 뜻한다. ‘읽고 계산하며, 머리를 쓰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은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앨리스가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면서 “우스꽝스러운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병(病)이다. 우리는 모두 존엄을 받아야만 할 존재”라고 말하는 장면이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치매 환자들의 현실은 참혹하다. 지난 10일 서울 수유동의 한 빌라에서 치매에 걸린 언니(87)와 살던 83세의 최모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지 오래돼 부패가 진행됐지만, 최 할머니의 언니는 치매 증상이 있어 신고를 못 했다. 언니도 전신 쇠약 상태였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급속한 고령화로 2025년에는 한국의 노인성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환자 관리 실패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간호 부담 확대는 저출산으로 가뜩이나 심각해지는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식해 범(汎)국가적 치매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13년부터 2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을 시행하면서 조기 검진 비율이 높아졌다. 치매특별등급 제도 시행 이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증 치매 환자(5등급자) 1만456명이 지난해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통합 치매관리 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았고 치매상담센터의 전담자도 1∼2명에 불과하다. 치매 상담요원의 40%는 타업무를 겸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특별등급 도입으로 대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반면, 경증 치매 노인을 돌볼 요양보호사 교육과 보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에서는 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수모와 냉대를 겪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강조하며 ‘이름을 바로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성사되지 않는다’고 했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 자에 ‘어리석을 매(매)’ 자를 쓴다.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치매 환자들의 존엄을 위해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증’이나 ‘신경인지장애’ 등의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대체 용어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직 명칭 변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인식 때문에 치매 진단 자체를 꺼리거나, 드러나지 않은 치매 환자가 많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한 치매 조기검진 서비스 확대와 인지 건강 프로그램 활성화가 절박한 이유다.

올 들어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고 있는 ‘치매 카페’는 근래 보기 드문 훌륭한 치매 관리 프로그램이다. 치매 강좌, 웃음치료, 두뇌발달 퀴즈풀이, 음악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치매 환자들의 삶에 활력을 준다. 정부는 ‘치매 카페’처럼 공공부문에서 치매 환자를 관리하는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 정책은 선제적이어야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