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심각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오른쪽) 그리스 총리가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 참석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구제금융 860억유로 대가로
연금개혁 - 과세기반 확대 등
15일까지 의회서 통과 요구
‘국유자산 매각’은 장기 과제

그리스 정부가 요청한 3차 구제금융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12일 오후 개최된 유로존 정상회의가 자정을 넘겨 13일 새벽까지 마라톤 회의를 거듭한 끝에 초강경 개혁 요구조건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날 개최될 예정이었던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하루 전인 11일부터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가 그리스 및 회원국 간의 의견차만을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회의 개최 수시간 전 전격 취소됐다가 13일에 열린다.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유로존 19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그리스 사태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끝장토론’을 벌였다. 통신들은 정상들이 성명 초안을 5번이나 고쳐쓰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및 도날드 투스크 EU정상회의 의장의 주재로 두 차례나 별도로 회동해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로존 정상회의는 그리스 정부에 3차 구제금융 약 860억 유로(약 108조 원)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부가가치세(VAT)시스템의 간소화 △과세기반 확대 △연금체계를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개혁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재정지출 자동 삭감 실행을 위한 개혁법안과 EU 은행의 회복을 위한 조치 및 결의안을 15일까지 의회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명확한 시간표’에 따라 △송전 부문 사업 민영화 △부실채권 처리 △그리스 행정부의 비정치화 △민영화 기구의 독립성 강화 등에 관한 개혁법안을 처리하라고 압박했다. 그리스를 최소 5년간 유로존으로부터 퇴출시켜 채무를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들자는 이른바 ‘한시적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아이디어는 정상회의의 성명에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그리스에 유로존으로부터 신속히 나갈 것(타임-아웃)을 요구한다”는 조항 역시 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 국유자산 500억 유로 규모를 매각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은 ‘장기 과제’로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의 엄청난 채무(총 3200억 유로·국내총생산(GDP)대비 180%) 조정과 관련된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치프라스 총리는 앞서 지난 10일 2022년까지 법정 퇴직 연령을 67세로 높이고 조기 퇴직에 불이익을 주는 등 ‘그리스 병’으로 불리는 ‘퍼주기식 복지’를 대폭 삭감하며, 이를 통해 향후 2년 동안 120억~130억 유로의 재정 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자국 의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채권단의 제안(79억 유로)보다 40억~50억 유로가 많은 규모다. 하지만 유로존 정상들은 치프라스 정부의 개혁 실천 의지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그리스의 입장에서 보면 ‘치욕적인 수준’의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유로존 정상회의가 내놓은 ‘최후통첩’을 “그리스 정부가 삼키기 힘든 약”이라고 지적했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역시 13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친 발상’으로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프라스 총리는 이르면 13일부터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을 받아 파산 직전의 그리스 은행에 수혈하기 위해 연정 붕괴 및 국내의 비판 여론 고조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회의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