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만 유독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이돌(Idol). 엄밀히 말해 ‘idol’의 표준 발음은 ‘아이들’이 맞죠. 하지만 ‘우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이들이 한국에서는 10∼20대 초반 연령대에 인기가 높은 기획형 가수 집단을 뜻하며 ‘아이돌’로 불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언론사도 idol의 한글 표기를 두고 꽤 고민하다 신조어의 형태로 ‘아이돌’을 채택했죠.

아이돌의 함의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긍정과 부정적 뉘앙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죠.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아이돌은 10대들의 우상입니다. 10대들의 소비력이 좌지우지하는 요즘 가요계는 아이돌이 장악하고 있죠. ‘아이돌답다’는 것은 요즘 감각에 부합하고, 세련됐으며,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이돌답지 않다’는 표현도 부정적인 건 아닙니다. MBC 예능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한 걸그룹 에프엑스의 루나, 비투비의 육성재, 에이핑크의 정은지 등이 빼어난 가창력으로 판정단의 탄성과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놀란 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저변에는 ‘아이돌은 노래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죠.

연기를 병행하는 일명 ‘연기돌’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습니다. JYJ의 박유천과 미쓰에이의 수지는 각각 영화 ‘해무’와 ‘건축학개론’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남녀 신인상을 휩쓸었죠. 노래 잘하는 아이돌, 연기 잘하는 아이돌에 관한 기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의외의’ ‘기대 이상의’ ‘놀라운’ 등이죠. 물론 칭찬입니다. 하지만 그런 표현 뒤에는 아이돌에 대한 폄하가 숨어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사뭇 다른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SBS 드라마 ‘심야식당’에 출연한 그룹 위너의 멤버 남태현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소위 ‘발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래퍼들의 대결을 그린 Mnet ‘쇼미더머니4’에서는 그룹 세븐틴의 멤버 버논이 부족한 실력으로 합격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왜 합격했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불거졌습니다. 객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데 드라마의 요직을 맡고, 오디션에 덜컥 합격해 특혜 논란에 불을 댕긴 거죠.

아이돌은 케이팝(K-POP)으로 대변되는 한류의 주역입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자 외화벌이의 역군이기도 하죠. 하지만 단지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이들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아이돌 시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무기는 오직 ‘실력’뿐이라는 것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