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표현에 합의 실수 형식·내용 모두 日에 패배”
“위안부협상 등도 ‘꼼수’ 우려 같은 실수 막을 대책 세워야”

한국 외교가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형식·내용에서 일본에 모두 패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향후 일본의 후속 이행조치를 제대로 강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정부가 한·일 간 최대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에서도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때문인지 정부 자체 평가도 “값진 성과”(5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서 하루 만에 “소기의 성과”(6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협상의 최대 실수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상당히 모호하게 표현하는 데 합의한 점을 꼽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은 처음부터 강제노동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으며, 영문 표현만 보고 일본이 강제노동 불법성을 인정했다고 보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이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절충안으로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문구에 합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일 양국이 각각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면서 논란을 촉발하는 진앙지가 됐다. 외교부의 과다한 ‘자기홍보’도 독이 됐다. 윤 장관이 5일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밝혔는데, 이는 다음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강제노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반박성 대응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주철기 수석까지 나서 “일본 측 대표의 영문 발언이 원문”이라고 강변했지만, 양기호(일본학) 성공회대 교수는 이날 “등재 결정문이 아니고, 일본 정부 대표의 발언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약속한 등재시설 정보센터 등 이행조치 시행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한국이 직접 관여할 여지가 적은 상황에서 일본이 팸플릿 등에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을 제대로 명기하지 않거나 한구석에 숨겨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위안부 협상에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항상 협상 뒤 다른 해석을 내놓는 꼼수를 부리는 만큼, 일본의 ‘뒤통수치기’까지 감안해 꼼꼼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양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간에 구체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후 국제사회에 인정받을 만한 조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합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보영·인지현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