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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77) 시인의 시는 늙지 않는다. 시집을 낼 때마다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시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과 현명한 통찰력이 있다. 40대에 이미 죽음을, 그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본 ‘풍장’ 연작을 쓴 그는 요즈음엔 삶의 형상화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즐거운 편지 중). 1958년, 5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여전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연애시로 사랑받는 ‘즐거운 편지’로 등단한 그는 그해 첫 시집 ‘어떤 개인 날’을 낸 뒤 지금까지 시집 15권을 냈다. 이들 중 2003년 35년간 재직한 서울대 영문과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쓴 시들을 묶은 것이 최근에 펴낸 ‘꽃의 고요’(2006), ‘겨울밤 0시 5분’(2009), ‘사는 기쁨’(2013·문학과지성)이다. 시인의 사당3동 동네가 무대가 된 시들이다. “대학에 강의할 땐 학교에 있거나 사람을 만나도 시내에 나가서, 동네를 둘러 볼 여유가 없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아파트 주변 산책을 하면서 시를 썼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열세 번째 시집인 ‘꽃의 고요’에는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자연 현상과 일상 속 마음의 섬세한 움직임을 포착한 시 68편이 묶여 있다. 3년 뒤에 펴낸 ‘겨울밤 0시 5분’에는 세월이 만든 풍경 속에서 생의 경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이야기하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 늙은 몸에 대해, 인생의 종점을 눈앞에 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시는 결코 어둡지 않다. ‘사는 기쁨’에서도 그는 여느 젊은 시인 못지않은 열정과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의 구석진 부분까지도 환하게 꿰뚫어본다.

3, 4년 간격으로 꾸준히 시집을 내놓고 있는 그는 내년 여름이나 가을쯤 열여섯 번째 시집을 내놓을 예정이다. 뜨거운 여름이 좋으면 여름에 내고, 가을 바람이 좋으면 가을에 낼 예정이다. “요즘 우리 젊은 시인들 사이에선 부조리 시가 유행하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상황이 아닐까 한다. 나는 그보다는 삶을 형상화하는 시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런 시를 쓰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