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最大·最古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를 가다

이미지 크게보기 남성복의 향연이라고 불리는 ‘피티 워모’에서 만난 이탈리아 ‘멋남’ 들. 화사한 붉은 계열 재킷에 시원한 스트로햇을 쓴 남성(위쪽 사진의 오른쪽)과 스니커즈와 넥타이의 컬러를 비슷하게 맞춘 남성(아래쪽). 전명진 사진작가 제공

르네상스의 발상지, 예술로 꽃피워진 도시 피렌체. 옛 영광의 흔적 위에 패션으로 새로운 예술을 만드는 ‘멋남’이 즐비하다. 올해로 88회를 맞이한 ‘남성복의 향연’피티 워모(Pitti Uomo). 지난 16일(한국시간)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열린 이 세계 최대·최고(最古)의 남성복 박람회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이탈리아 대표 관광지가 잠시 남성 패션의 성지로 변신하는 것. 패션을 주제로 하는 행사인 만큼 참가 남성들의 차림이 매번 화제가 된다. 타이 대신 천을 둘러메거나, 비닐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고, 소품으로 부엉이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 피티 워모의 거리 패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시 세계로 전파된다. ‘그와 그녀의 취향’ 필자인 지승렬 씨가 그 거리 속을 탐험했다. 올해 이탈리아 신사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있을까.

◇밀짚모자(straw hat·스트로햇) = 올해 유난히 모자가 눈에 띈다. 페도라, 파나마햇, 밀짚모자, 스트로햇 등 이름도 다양하다. 국내 남성들 사이에선 페도라라는 표현이 익숙한데, 보다 넓은 의미에서 스트로햇이 가장 정확하다. 스트로햇 중에서 윗부분에 홈이 패인 형태가 페도라, 둥글고 납작하며 상단이 평평한 것이 보터햇, 둥근 공 같은 모양이 보울러다. 또, 파나마햇은 본래 에콰도르의 전통모자를 일컫는 말인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때 써서 붙여졌다는 설과 파나마 운하를 통해 운반했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피티 워모의 멋쟁이들이 이 시원하게 생긴 모자를 슈트나 재킷 등 격식 있는 옷차림에 매치하는 게 흥미롭다. 감색 줄무늬 슈트와 하얀 콧수염으로 한껏 중후한 멋을 낸 신사의 머리 위에도, 화려한 색깔의 재킷과 화이트 팬츠, 그리고 손목에 주렁주렁 팔찌를 두른 젊은 이탈리아 청년의 머리 위에도, 어김없이 스트로햇이 있다. 햇빛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멋이다.

한국에서 슈트에 이 밀짚모자를 쓰려면 상당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특히, 빌딩 숲에선 더더욱. 언제 써 볼까. 북촌의 한옥마을이 떠오른다. 화려한 옷과 고풍스러운 모자가 완벽하게 어울릴 장소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성에겐 편안한 반바지와 부드러운 린넨 셔츠를 권한다. 슈트보다 덜 부담스럽게 모자를 쓸 수 있다. 그것도 어렵다면, 휴가지에서라도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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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스니커즈 = 슈트 아래 여전히 구두를 떠올리는지. 공식에 매이지 말자. 피티 워모 행사장 한쪽에 앉아 쉬다가 형형색색 화려한 스니커즈를 잔뜩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슈트 아래 과감하게 이 ‘격(格) 떨어지는’ 운동화를 신는다. 전체적으로 튀는 색도 있지만, 신발 끈만 화려하게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특히, 끈의 색깔을 재킷이나 타이 등 다른 액세서리와 맞추는 센스가 놀라웠다.

이 센스는 한국 신사도 활용해 볼 만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화이트나 블랙 바탕의 평범한 신발에 끈 색깔만 화려하게 바꿔보자. 여기에, 신발 끈과 동일한 색의 부드러운 면 라운드 티셔츠를 입는 거다. 그 위에는 감색 혹은 짙은 회색 재킷. 컬러로 포인트를 준 세련되고 멋진 옷차림을 완성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신발로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링엔 바지의 기장과 통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발목 위 길이에, 무릎 아래로 점점 통이 좁아지는 디자인의 바지를 입어야 신발이 눈에 더 잘 띈다. 펄럭거리는 바지는 금물이다.

◇블랙&화이트 패션 = 매해 피티 워모에선 클래식 슈트에 화려한 색감의 착장이 대세다. 그러나 올해는 블랙과 화이트로 깔끔하게 멋을 낸 사람들이 꽤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단순한 디자인과 블랙&화이트 패션은 알록달록한 차림의 신사들 사이에서 역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기본적으로 피티 워모에 모여든 패션계 관계자들은 확실히 화려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작도 슈트와 재킷이라는 비즈니스 차림이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매일 출퇴근하는 복장이 재킷과 슈트 아닌가. 매년 피렌체의 향연을 준비하는 이들처럼 한국 신사들도 일상에서 조금씩 변화를 찾으면 좋겠다. 아주 약간의,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피렌체(이탈리아)=지승렬 LF브랜드마케팅담당